"얘들아, 더 압박하고 빨리 움직이자!"
또래보다 한 뼘은 커 보이는 건장한 골키퍼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소리치자 동료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비에서도 빈틈이 없었다. 상대 공격수가 날린 강한 슈팅도 철벽같이 막아선 그를 지나가지 못했다. 19일 개막한 제70회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겸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조선일보·대한축구협회·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 주최)에 출전한 포항제철고 주전 골키퍼 김로만(3학년)은 단박에 시선을 끄는 선수였다.
김로만은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축구 선수다. 러시아에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초등학교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한 김로만은 처음엔 '혼혈'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축구에 몰두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고 했다.
학창 시절 야구를 한 아버지와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어머니의 운동신경을 물려받은 김로만은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180㎝가 훌쩍 넘었던 그는 졸업반인 현재 192㎝, 90㎏으로 프로선수 못지않은 체격을 갖췄다. 판단력과 순발력이 뛰어나 포항제철중 시절부터 페널티킥 전문 골키퍼로 관심을 모았다. 올해 전기 리그에선 11경기 7실점(6경기 무실점)으로 활약했다. 그는 "2018년 어머니의 나라에서 열리는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으로 뛰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로만은 지난해 전국고교축구선수권 결승에서 수원공고에 패하며 준우승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전국체전, 대통령금배 등 거의 모든 대회를 우승했는데 전국고교축구선수권에서만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며 "이번엔 꼭 정상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김로만의 선방을 앞세운 포항제철고는 이날 경북 김천 종합운동장 보조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64강전에서 경기 에이스웨이FC를 4대0으로 꺾었다. 이진현(후10분), 권승철(후17분), 이동진(후26분), 김예닮(후40분)이 후반 들어 내리 4골을 터뜨렸다. 포항제철고는 21일 오전 11시 50분 경북보건대에서 안양공고와 32강전을 벌인다.
대회 개막일인 이날 '디펜딩 챔피언' 수원공고가 64강전에서 중경고에 1대3으로 패하며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전반에 선제골을 내준 수원공고는 수원 JS컵에서 활약했던 임민혁이 후반 14분 동점골을 넣었지만 이후 두 골을 내주며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4강에 오른 울산현대고는 목포FC를 4대1로 누르고 32강에 올랐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의 모교인 안양공고는 울산의 강호 학성고를 승부차기 끝에 5대3으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