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이끈 고음악 아카데미(The Academy of Ancient Music), 트레버 피녹의 잉글리시 콘서트, 프란스 브뤼헨의 18세기 오케스트라, 지기스발트 쿠이켄의 '라 프티트 방드(La Petite Bande)'…. 1970~1980년대 고(古)음악 연구자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박물관에 전시된 옛날 악기들을 재현해서 앞다퉈 무대에 올렸다. 17~18세기 당시 악기와 연주법으로 바로크와 고전파 음악을 연주하는 고음악 단체들도 잇달아 등장했다. 음반사들은 이들이 녹음한 헨델과 모차르트, 베토벤 음반들을 쏟아내 베스트셀러 앞순위에 올렸다. '고음악 혁명'이라 할 만했다. 국내 음악 애호가들은 먼저 음반으로, 그리고 해외 연주 단체들의 줄이은 내한 공연으로 고음악을 접했다. 사람들은 왜 현대 오케스트라보다 빈약한 소리에 어설프게조차 들리는 고음악에 매료되는 걸까.

지난 15일 덕수궁 돌담길을 찾은 고(古)음악 지휘자 케네스 몽고메리는“고음악은 단순한 복고 취향 취미가 아니라 음악을 제대로 즐기는 새로운 방법 중의 하나”라고 했다.

오는 주말 내한 공연을 위해 서울을 찾은 18세기 오케스트라 지휘자 케네스 몽고메리(72)는 "수백년 동안 세월이 덧씌운 묵은 때를 걷어내면 화가가 밝고 화사하게 그린 오리지널 그림이 드러나듯, 현대 오케스트라에 의해 과장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베토벤을 걷어내고, 작곡가가 의도한 원래의 음악을 들려주겠다"고 했다. "동시대 악기로 연주하면 훨씬 깨끗하고 투명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개량한 현대 악기로는 낼 수가 없는 소리죠."

1981년 출범한 18세기 오케스트라는 작곡가 당시의 악기를 재현해 금속제 현(絃) 대신 양의 창자로 만든 줄을 쓰고, 당시의 주법으로 연주하는 단체다. 작년 8월 설립자 브뤼헨이 세상을 뜨면서 3년 전부터 이 단체와 연주해온 몽고메리가 내한 공연 지휘를 맡았다.

현대 오케스트라에 맞춘 요즘 콘서트홀에서 소규모 연주자들이 옛날 악기로 연주하는 건 시대착오 아닐까. 몽고메리는 "19세기 후반 브람스가 교향곡을 썼을 때만 해도, 제1바이올린 연주자는 9명밖에 안 됐다. 80명, 100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건 작곡가의 원래 의도가 아니다"고 했다. "소리가 작아 걱정된다고요? 청중들은 금방 적응합니다. 소리가 조금 작으면 더 집중해서 오케스트라에 귀 기울이게 되거든요."

18세기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장면.

고음악은 한때 '정격 연주'(Authentic Performance)라는 표현을 쓸 만큼, 독선적으로 비쳤다. 몽고메리는 "초창기엔 악기나 연주법 모두 융통성 없이 옛날 그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요즘은 훨씬 유연해졌다"고 말한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인 몽고메리는 플루트 거장 제임스 골웨이와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바순을 연주하기도 한 지휘자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부활'부터 현대 오페라까지 오페라 지휘자로 활약했다. 현재 암스테르담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가르치고 있다. 18세기 오케스트라는 상설 단체가 아니라 연주가 있을 때만 뭉치는 '헤쳐 모여' 식의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다. 교수나 솔리스트 등으로 일하는 25개국 출신 단원 55명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모여 리허설을 가진 후 순회 공연에 나선다. 이번 내한 공연에선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교향곡과 협주곡, 성악곡을 서울과 고양, 대전에서 각각 다른 프로그램으로 선보인다. 기업(한화)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여느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보다 티켓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5만~10만원)해서 더 반갑다.

▷한화 클래식 2015-18세기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19일 고양 아람누리, 20일 예술의전당, 21일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070)4234-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