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1 사태 때 우리 군 주력 소총은 구닥다리 M1이었다. 북한 기습 공격에 놀란 정부는 베트남전에서 각광받던 최신형 M16 소총의 국내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미국도 동의했지만 제작사 콜트와 벌인 협상이 3년 넘게 끌어 73년에야 완공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교섭을 지켜본 김정렴이 회고록에 썼다. '무기 공장 건설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고 교섭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절감했다.' 이듬해 M16을 양산하면서 한국군도 M16 시대를 맞았다.

▶소련 AK-47이 20세기 소총의 베스트셀러라면 M16은 서방 진영을 대표한 작품이다. 2.89㎏으로 가벼우면서 살상력이 뛰어났다. 이 '획기적 신무기'도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베트남전 초기 대부분 소총이 전투 중에 고장 나 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청소가 필요 없는 총으로 잘못 알려진 탓이었다. 노리쇠 전진 장치를 비롯해 몇 가지를 개량하고 청소 도구가 보급돼 명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콜트는 2000년을 전후해 미 육군 주력 소총 M4 카빈도 공급했다.

▶1836년 새뮤얼 콜트가 세운 콜트사는 미국 처음으로 연발식 권총을 대량 생산했다. 콜트 권총 시리즈는 윈체스터 장총과 함께 미 서부극을 상징하는 총이 됐다. 초기 콜트 모델들은 골동품으로 비싸게 거래된다. 1880년대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가 OK목장에서 벌인 전설적 결투는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 어프가 실제로 썼던 콜트 권총은 지난해 경매에서 22만5000달러에 팔렸다.

▶미군은 물론 한국군도 써 온 45구경 M1911 자동 권총도 콜트 제품이다. 12·12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러 온 신군부에 맞서 김오랑 특전사 비서실장이 쏜 권총이 M1911이다. 개발된 지 100년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군경이 애용한다. 전 세계 어린이 장난감 권총의 모델이기도 했다. 미군에선 85년 베레타 M9로 교체됐지만 특수부대와 FBI는 여전히 콜트 권총을 쓴다. 구경 11.43㎜ 탄이어서 9㎜ 탄을 쓰는 M9보다 화력이 세기 때문이다.

▶콜트는 1861년 남북전쟁부터 이라크전까지 150년 넘게 미군에 권총과 소총을 납품했다. 해가 지지 않을 것 같던 '콜트 왕국'이 엊그제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M4 카빈의 저작권을 보장받지 못해 독점권이 무너지고 신형 총기 개발에 실패한 탓이다. 콜트는 권총 시장에서 철수하고 군사·수집용 무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콜트사 파산은 군수산업도 냉엄한 자본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