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장한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가 2017년 무동력 친환경 테마파크로 변신한다. 전기모터로 돌아가는 각종 놀이기구를 없애고 사람이 몸을 움직이며 즐기는 체험형 시설을 들여놓을 계획이다. 관람객은 '은하열차888'을 타고 짜릿한 회전을 하는 대신 노를 저어가며 보트를 타거나 거대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자연과 하나 되는 푸근한 시간을 갖게 된다.

서울랜드 입장에서야 변신이지만 일부 관람객에게는 변심이다. 1973년 최초의 본격적인 놀이공원인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선두로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1976), 서울랜드, 잠실 롯데월드(1989) 등이 더 무서운 놀이기구를 들여오기 위해 경쟁했다.

무서운 자극을 주는 스릴형 기구를 좋아하는 국내 관람객은 갈수록 높아지고 빨라지는 기구를 타고 즐겁게 비명을 질렀다. 서울랜드가 친환경 놀이터로 변해도 자극을 원하는 관람객의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갈수록 높이, 빠르게, 무섭게 변하는 놀이기구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진화 거듭해온 놀이기구

국내 최초의 스릴형 놀이기구는 1973년 어린이대공원에 나타난 청룡열차다. 탑승구 주변에는 다 타고 내린 후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대성통곡하는 사람이 많았다. 360도 회전 기능조차 없는 단순한 궤도 열차였으나 처음 접하는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청룡열차를 위시한 어린이대공원의 인기에 서울시는 버스 노선 18개를 공원에 닿도록 조절했다.

최근에는 '놀이기구는 안전하다'는 근본적인 믿음을 흔들어 공포를 극대화한다. 서울에서도 원정 탑승을 가는 인기 기구인 경주월드의 토네이도는 발판이 없다. 탑승하는 동안 양다리가 공중에서 떨어져 나갈 듯 흔들린다. 어깨를 누르는 안전 바(bar)는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 10㎝ 정도 위로 들려진다.

무섭기로 소문난 경주월드의 파에톤(위)은 ‘바닥 없는 롤러코스터’로 유명세를 탔다.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아래 왼쪽)는 국내 최초의 나무 롤러코스터다. 최고 시속 104km로 질주하며 공포를 안겨준다. 서울랜드의 스카이엑스(오른쪽)는 50m 높이에서 스스로 줄을 당기며 떨어진다.

지난 8일 오후 기자는 극한의 공포를 맛보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토네이도 좌석에 앉았다. 원형 기구가 서서히 회전하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30도로 서서히 상승했다가 바닥으로 메다 꽂듯 내려왔다. 다시 왼쪽으로 100도, 오른쪽으로 120도를 번갈아 돌았다가 꽂자 사방에서 비명이 낭자했다. "아저씨~!(그 버튼은 제발 누르지 마세요)" "으악~!" 이대로 공중으로 튕겨져나갈 것 같다는 생각을 수백 번쯤 하고 나서야 탑승이 끝났다.

에버랜드 T익스프레스는 토네이도와 양대 산맥을 이룬다. 어깨 안전 바가 아예 없다. 백미(白眉)는 나무 롤러코스터가 들려주는 '공포의 교향곡'이다. 최고 속도 104㎞로 국내 1위인 T익스프레스는 1641m를 3분간 지나는 동안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삐그덕 덜거덕거린다. 나무가 못질이 덜 돼 무너질 듯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덮친다. 출발 후 56m 상공으로 올라가는 동안 불협화음이 점점 커진다. 꼭대기에서는 에버랜드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77도로 내리꽂는다. 공포의 무한궤도에 오른 듯 끝날 것 같지 않은 두려움에 온몸이 떨리는 3분이었다. 이쯤 되면 무섭다고 할 만했다.

세계 최초 롤러코스터는 1884년 6월 개장한 미국 뉴욕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 놀이공원에 설치됐다. 나무 널빤지를 벤치처럼 연결해 15m 높이의 탑 두 개 사이를 용을 쓰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수준이었다. 시속 9.7㎞였으니 요즘 관람객에게는 회전목마 수준이다. 현재 가장 빠른 롤러코스터는 아부다비 페라리월드의 포뮬러 로사로 시속 240km까지 낸다.

롤러코스터를 비교할 땐 속도를 주로 따지지만 쾌감의 중추를 자극하는 것은 속도보다 예측 불가능성이다. '4D 롤러코스터'로 불리는 일본 후지큐 하이랜드의 에에자나이카는 76m 높이로 올라갔다가 정확히 수직으로 내리꽂힌다. 이 정도만 해도 최고의 난이도다. 진정한 묘미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빠르게 달려가고 떨어졌다가 갑자기 제자리를 맴돌기도 하고 꺾었다 돌았다 다시 떨어진다. 종잡을 수 없는 열차를 탄 관람객의 비명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온다.

공포의 시조 롤러코스터에 이어 1990년대 중반 좌우를 왕복하며 겁을 주는 바이킹 등의 진자운동형, 빙글빙글 돌며 약을 올리는 회전형 기구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1998년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이 등장하며 공포의 신세계가 열렸다. 40명을 아파트 25층 높이인 78m로 끌어올린다. 3초간 멈췄다가 2.5초간 자유 낙하한다. 누군가 '내장이 통째로 빨려나가는 느낌'이라고 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명성에 롯데월드 전체 매출이 20% 하락하던 해에도 자이로드롭은 홀로 20% 성장했다.

2000년대 접어들자 번지점프형이 많아졌다. 서울랜드 스카이엑스는 번지점프와 그네를 합쳤다. 시설이랄 것도 없이 기둥 네 개와 줄 하나다. 줄에 매달려 50m 상승해 스스로 줄을 당기며 떨어진다. 우물쭈물하다 제때 줄을 못 당기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울부짖게 된다. 그 맛에 중독된 마니아가 많다. 김민호 경주월드 기획팀 대리는 "최근 스릴형 놀이기구는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많다"며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서서 타는 롤러코스터도 있다"고 말했다.

스릴, 도파민에 지배당하는 순간의 쾌락

무서운 기구를 제 발로 찾아가 돈 주고 타는 것은 호르몬의 장난이다. 인간은 높은 곳에서 빠르게 추락할 때 도파민이 평소에 비해 과하게 분비되면서 극도의 쾌감을 느낀다. 쾌감의 강도는 속력이 아니라 속력의 변화, 즉 가속도에 좌우된다.

스릴을 느끼는 정도는 흔히 중력가속도로 표기한다. 중력가속도는 지구 표면으로 물체가 떨어질 때의 가속도를 말한다. 자유낙하하는 물체의 중력가속도를 1G로 표기한다.에버랜드 T익스프레스는 중력가속도 4.5G로 1G보다 4.5배 강한 압력이다. 이원식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G값이 커지면 피가 다리 쪽으로 쏠려 뇌에 산소를 실어나르는 혈액이 부족해진다"고 말했다. 놀이기구 설계자는 이 같은 가속도 값을 최대한 밀어붙이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놀이기구를 고안한다.

놀이기구엔 중독성이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안도할 때의 쾌감이 극대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오후 여자 친구와 롯데월드 자이로스윙을 두 번 연속 탄 유정모(27·회사원)씨는 "이곳이 아니면 어디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해보겠느냐"고 말했다.

놀이기구가 올라가거나 떨어질 때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목소리가 안 나올 때가 있다. 중력가속도의 변화 때문이다. 소리는 가슴과 배의 근육으로 수축된 허파 공기가 기관지를 통과하며 나온다. 중력가속도 때문에 피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근육이 안 움직이니 소리가 나오기 어렵다.

관람객들은 비명조차 못 지를 정도로 중력에 눌리고 각도에 꺾이면서도 '공포'를 사러 놀이공원에 간다. 놀이기구는 더 높은 곳에서, 더 빨리, 더 불안하게 떨어뜨리며 묻는다. '원하시는 공포가 이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