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21층 노조위원장 선거 투표장. 아기를 안고 온 직원이 투표를 마치고 투표장을 나섰습니다. 육아 휴직 중이라는 직원은 “투표를 위해 오랜만에 거래소를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치러진 한국거래소 신임 노조위원장 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89.1%. 지난 몇년 간 투표율이 70~80%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유독 참여율이 높았다는 게 거래소 측의 설명입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출장자, 육아휴직자 등을 제외하면 투표할 수 있는 직원은 전부 투표한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노조위원장 선거는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이례적으로 5명이 후보로 출마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동기 당선자와 유흥열 전 노조위원장, 이국철, 손승태, 오범식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보통 후보자가 3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5명이나 출마했다”며 “5명 모두 강성 노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5명이나 뛰어든 이유는 거래소 최대 현안인 코스닥시장 분리에 반대하는 직원들의 열망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번 노조위원장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가 ‘코스닥시장 분리 저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입니다.

정부는 올해 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에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거래소 직원들은 코스닥시장이 거래소에서 분리될 경우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코스닥 분리가 직원들의 위기 의식을 자극했다”며 “유흥렬 전 노조위원장도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려다가 코스닥 분리 안건 해결이 시급하다고 여겨 재출마했다”고 말했습니다.

코스닥 분리에 반대하는 직원들은 선거 전부터 강한 결속력을 보였습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매년 노조위원장 투표를 진행하기 전에 후보 연설회를 여는데, 올해는 직원들이 관심이 커 연설회를 열기 전에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5명의 후보는 토론회에서 코스닥시장 분리 안건을 위주로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직접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직원들은 거래소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동시접속자만 220명에 육박했습니다. 연설회 동시접속자도 207명에 달했습니다.

거래소 노조위원장 선거 중 처음으로 사전투표도 진행했습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투표일에 출장이나 외부 일정 등이 겹친 직원들의 요구로 사전투표도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새 노조위원장에는 이동기 코스닥시장본부 상장제도팀 과장이 당선됐습니다. 1차와 2차 투표를 거쳐 311표를 획득한 이동기 후보가 240표를 얻은 이국철 후보를 제쳤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으로 알려진 이 당선자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코스닥시장 분리 관련 행사에서 “왜 거래소는 발언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항의했다가 행사 주최측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 당선자의 열의와 패기에 감동한 직원들이 이 사건 이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후문입니다.

코스닥시장 분리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이동기 당선자가 당선되면서 코스닥시장 분리를 두고 거래소와 금융당국의 갈등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거래소 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참여한 만큼 향후 노조의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