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 설렁탕에서 곰탕의 등장까지
19세기부터 서울을 대표하던 외식은 설렁탕이었다. 1920년에 20여개 정도였던 설렁탕은 1924년이 되면 100여개로 급증하며 '조선 음식계의 패왕'으로 등극한다. 커다란 설렁탕집들은 배달부를 수십명 둘 정도였다. 평양에서는 암소갈비 문화가 시작된다. 설렁탕과 갈비가 유행한 원인은 일본 경제 호황에 있다. 일본인들이 설탕, 가쓰오부시를 이용한 스키야키를 본격적으로 소비하면서 쇠고기가 대중화되고, 민간인과 군인 사이에서 쇠고기 통조림이 유행하면서 남은 소의 부산물들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서 소비됐기 때문이다. 평양에 이어 서울에 갈비가 등장하고 대구의 육개장인 대구탕도 등장한다. 전국의 장터가 정비되면서 진주와 함평 시장에 육회비빔밥과 순댓국도 등장한다.
1930년대는 불결한 뚝배기와 가게 앞에 진열된 소머리 등 위생 문제가 대두되면서 서울의 설렁탕은 정체를 맞는다. 중국인들의 호떡집이 성행하면서 호떡과 함께 팔던 돼지고기를 이용한 만두가 본격 소비된다. 고기 생산을 위한 비육이 본격화되고 재래종을 개량한 평안도의 명물 평북돈(平北豚) 등이 생산되면서 돼지고기 문화가 일정한 문화를 확보한다. 소 부산물이 아닌 살코기로 국물을 낸 곰탕 문화도 이즈음 시작된다.
음식에 설탕이 본격적으로 소비되면서 설탕을 넣은 달콤한 깍두기가 설렁탕과 곰탕의 조연으로 등장한다. 부산에서는 돼지국밥이 첫선을 보인다.
1940~50 소와 돼지의 만남, 돼지국밥
1940년대 해방 이후 곰탕이 외식으로 자주 등장한다. 나주나 영천같이 큰 우시장이 있던 지역에서는 쇠고기를 이용한 곰탕 문화가 시작된다. 서울에는 부족한 쇠고기를 먹으려는 방편으로 질이 떨어지는 부위를 양념에 재운 육수형 불고기가 탄생한다. 부산 국제시장에는 전쟁 중임에도 평양식 암소갈비 전문점이 등장하고 불고기·돼지고기집들이 성황을 이룬다. 포천과 수원에서도 쇠갈비 문화가 시작된다.
밀양에는 쇠고기 국물에 돼지 수육을 만 변형된 돼지국밥이 등장한다. 돼지고기에 익숙한 평안도 실향민이 남으로 대거 내려오면서 돼지고기 문화가 남한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돼지고기를 넣은 빈대떡은 이즈음 최고의 술안주로 자리 잡는다. 1950년대 들어선 6·25전쟁으로 육식에 익숙했던 실향민의 음식 문화가 남한 사회에 깊고 넓게 퍼진다. 부산에는 돼지국밥이 굳게 뿌리를 내리고 대전에는 실향민들에 의한 순댓국밥집들이 모습을 보인다. 전라도에는 내장을 주로 넣은 순댓국이, 경상도에는 돼지 머리를 넣은 돼지국밥이 서민의 지방, 단백질 공급원으로 자리 잡는다. 마포에는 최초로 돼지갈비를 파는 식당들이 등장하고 서울에서는 감자탕의 전신인 돼지 뼈다귀를 파는 식당들도 모습을 보인다. 서울의 돈암동에서는 감자와 돼지 등뼈를 넣은 감잣국이 선을 보이고 청계천에서는 돼지 내장을 파는 집들이 들어서는 등 생존형 육식 문화가 외식 전면에 등장한다.
1960~70 식용유 등장과 함께 '통닭 전성시대'
1967년 7월에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쇠고기 등급제가 시행된다. 1965년에 발간된 직업별 전화번호부에는 서울의 한식당 300여개 중 39개가 불고기를 파는 집으로 등록돼 있을 정도로 불고기는 가장 대중적인 외식으로 자리매김한다. 1960년대 쌀 부족으로 시작된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쌀 소비가 제한되자 잡곡으로 분류된 찹쌀이 순대 속으로 들어가면서 인천과 영등포에 찹쌀순대 문화가 등장한다.
영양이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면서 명동에는 닭을 전기에 구워내는 영양센터가 생겨나고 소시지와 햄은 영양이 많은 음식으로 소개되면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소시지와 햄으로 만든 부대찌개가 등장한다. 1960년대 말에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산업화로 언양과 창원 광양에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구이형 불고기 문화가 꽃을 피운다. 부산에는 소 내장을 먹는 양곱창 문화와 해운대 암소갈비가 유행한다.
1970년대에는 1960년대에 시작된 양계 산업이 본격화되고 식용유가 대중화되면서 닭고기 문화가 꽃을 피운다. 1970년대 초반에는 서울과 수원, 대구, 광주 같은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마솥 시장 통닭 문화가 등장한다. 동대문 주변에는 닭을 삶아 먹는 닭 한 마리 문화도 시작된다.
1980~90 삼겹살, 국민 음식으로 등극
본격적인 강남 개발로 가든형 갈비 문화가 중산층의 외식으로 자리 잡는다. 설렁탕, 족발 같은 서민형 음식 문화가 강남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마늘 치킨, 바비큐 치킨 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통닭의 시대에서 조각난 닭을 먹는 치킨의 시대로 진입한다. 통금 해제와 식당 영업 제한이라는 괴리 때문에 심야에 몰래 영업을 하던 응암동 감잣국 거리가 호황을 누리고 청진도 해장국도 활황을 맞는다.
1990년대 쇠고기에 대한 욕망의 확대로 양념 대신 생으로 먹는 생고기 시대가 본격화된다. 고기의 질이 중요해지면서 마블링이 가득한 쇠고기가 최고로 등극한다. 생고기를 직화에 구워 먹는 육식 문화는 영주 같은 지방에도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들어 광우병 등의 공포로 쇠고기 소비는 위축된다. 1997년에 농축산물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냉장 삼겹살이 들어오고 때마침 맞은 IMF로 인해 가격이 저렴한 냉동 삼겹살이 국민 육식으로 등극한다. 문호 개방으로 몽골, 동남아인이 정착하면서 그들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양꼬치 같은 음식 문화가 육식의한 축으로 자리를 잡는다.
2000 숙성, 새로운 트렌드로
2000년대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육식은 정체기를 맞게 된다. 뼈와 연관된 음식도 어려움을 겪는다. 육식의 지방 성분, 나트륨 과다 섭취 같은 믿음 때문에 육식은 이전보다 성장이 주춤해지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성장세로 돌아선다.
2000년대 후반에는 소를 30일 정도 숙성해 먹는 에이징 문화가 들어오고 국적과 기법을 불문한 세련되고 다양한 육식 문화가 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