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걱정도 팔자다. 절대로 그럴 위인 못 된다."

12일 밤 서울 서강대 극장 메리홀. 문을 열자 뜨거운 기운이 훅 나왔다. 머리 희끗희끗한 60대부터 고교생티가 가시지 않은 학생까지 헐렁한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무대를 누비면서 대사를 주고받았다. 연출가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지시하고, 그 손가락을 따라 조명이 바삐 움직였다.

이영광(앞줄 왼쪽서 셋째)·이희성(앞줄 맨 왼쪽)씨 등 서강연극회 출신 졸업생들이 동문 합동 공연 최종 리허설을 마친 뒤 재학생들과 무대에 모였다.

이들은 이 대학 연극 동아리인 '서강연극회' 소속 선후배다. 1960년 창단 후 55년 만에 '100번째 정기 공연'을 맞아 재학생과 졸업생이 총출동해 합동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15~23일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사쿠라 가든'.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벚꽃 동산'을 195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정기 공연 횟수가 '100'을 눈앞에 둔 작년 가을부터 학점 압박에 시달리는 재학생들도, 생업에 바쁜 동문들도 "이제 뭉칠 때"라고 말하면서 의기투합했다. 배우들은 70학번부터 올해 입학한 15학번까지 45년이나 터울이 진다. '유신 세대'부터 '386 세대' '응답하라 1994 세대'를 거쳐 'SNS 세대'까지 아우른다. 다수의 아마추어에 '프로'들도 가세해 연극·뮤지컬 연출가 황재헌(40·경제)이 연출을 맡았고,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탤런트 정한용(61·경제)도 단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배우가 모자라면 어쩌나 하던 걱정이 배우가 넘치는 행복한 고민으로 바뀌어 트리플(1역 3인)·쿼드러플(1역 4인) 캐스팅까지 했다.

연습 초기엔 좀 데면데면했다. 정지수(36·영문)씨는 "부모 자식 간을 뛰어넘는 나이 차이 탓인지 처음에는 말 섞기가 어렵더라"고 했다. 하지만 분위기 반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의실을 빌려 책걸상을 밀어젖히고, 강도 높은 신체 훈련과 발성 연습을 하며, 연습 뒤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는 일상을 함께하면서다. 연출은 "집안 잔치로 착각 말라. 예매 사이트(인터파크) 오픈해 관람료(전석 5000원)까지 받고 기성 극단과 경쟁한다"며 배우들을 꾸짖고, 작품 방향을 둔 제작진 간 이견으로 냉랭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한잔 술로 풀며 살가워졌다.

최고참인 박이준(64·물리)씨는 "45년 나이 차에도, 55년 세월에도 변치 않는 게 있더라"며 웃었다. 입학 석 달째인 진유나(19·수학)씨는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어른이셨던 분들과 한자리에 선 게 신기하다"고 했다. 배우인 노윤정(48·종교)씨는 "30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런스루(run through·실제 공연처럼 하는 연습)로 진행된 이날 일정이 끝나자 이들은 학생, 넥타이 부대, 사업가의 원래 옷차림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