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먹는 방송)이 유행이고, 요리사가 스타가 되고, 음식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고, 음식 자체가 돈이 되고, 그것이 '맛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문화가 되는 상황이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를 단순히 이런 문화의 연장선에서 보는 건 이 아름다운 작품을 명백히 오독하는 것이다. 요컨대 식사는 곧 삶이다. 영화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라는 말로 너무나도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을 뭉뚱그리지 않는다. 1년, 사계절, 하루, 세 끼로 삶을 잘게 쪼개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고 만들어 먹는 것으로 이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문구인 '일본판 삼시세끼'라는 말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지언정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전혀 고민하지 않은 단어의 나열로 느껴진다.
어쨌든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감독 모리 준이치)은 전작인 '리틀 포레스트:여름과 가을'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작품이었고(이야기의 전개상 당연한 결과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서늘하고, 쓸쓸하면서도 마음을 따뜻하게 덮여주는 것이었다.
이치코(하시모토 아이)는 도시에서 살다가 고향인 코모리로 돌아왔다. 코모리는 자전거를 타고 30분은 나가야 마트에 갈 수 있는 시골 마을. 이치코의 엄마는 그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갔다. 그는 혼자서 농사를 짓고, 끼니를 해결하며 코모리에서 사계절을 보낸다.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은 우리가 이른바 '일본 감성'이라고 부르는 감정의 골을 파고드는 영화다. 대놓고 표현하기보다는 에둘러 말하고,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관객과 교감을 시도한다. 어떤 사건 그 자체를 이야기하며 그 일을 맞이한 인물의 감정 진폭을 다루기보다는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이 취하는 행동과 변화를 관찰한다. 이치코의 내면은 끊임없이 소용돌이치지만, 그의 삶은 그래서 잔잔하게 흘러간다.
영화는 이치코가 농사를 짓고, 식재료를 채취하고, 그것으로 음식을 해먹는 과정을 담는다. 그 사이에 주변 인물들이 이치코를 스쳐가고, 엄마의 요리 이야기가 플래시백으로 삽입된다. 이게 전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감정의 여진을 남길 수 있는 건 이 특수한 상황에 놓인 젊은 여성의 삶을 너와 나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치환해내는 모리 준이치 감독의 특별한 능력 덕분이다. 여기서 요리는 이치코와 관객을 연결하는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는 '고리'다.
감독의 연출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키는 성실한 화법 덕분이다. 이치코가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그리는 건 단순히 그것이 시각적인 '재미'를 담보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치코와 이치코가 만든 음식이 동시에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는 건 한 끼 식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1년, 사계절, 하루, 낮과 밤, 식사는 모두 순환과 반복의 메타포다. 끼니는 이 회귀의 최소 단위다. 준이치 감독은 여기서 한 끼 식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즉, 요리뿐만이 아니라 요리가 될 식재료를 직접 가꾸고, 채취하는 모습까지 담는다. 이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감정의 표면이 아닌 내부로 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재료 수확 자체가 어려운 음식, 재료를 오랜 시간 땅에 묻어둬야 하는 음식, 긴 시간 발효가 필요한 음식, 데치고 볶고 삶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음식, 재료를 다듬은 수고에 비해 그 양이 턱없이 적은 음식도 있다. 이치코는 언뜻 음식을 만든다는 점에서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렇게 각기 다른 과정이 필요한 시간을 견디면서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의 음식은 이를테면, '완성된' 음식이 아닌 '완성 중'인 음식이다.
이치코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거나 자기 자신을 쉽게 비하하지 않는다. 사라진 엄마가 그리워 눈물 흘리지도, 비난하며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는 코모리로 돌아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정직하게 짊어진다. "혼자 열심히 살아가는 거 대단하다 생각하는데 한편으론 그냥 도망치는 거 아냐?"라는 유타(미우라 타카히로)의 말에 이치코는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코모리에서 1년을 보낸 이치코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음식이고, 하나의 음식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그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간 속에서 이치코는 엄마의 요리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하나하나 알아 간다.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건 뛰어난 대사 작법 능력이다. 겨울 땅에 묻어둬야 맛이 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서 "겨울도 훌륭한 조미료"라고 말하거나 유난히 손질이 어려웠던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나서는 "들어간 수고에 비해 양이 적다. 그래도 맛있다"라고 말하는 장면 등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억에 남을 만한 대사다.
하시모토 아이는 자신이 왜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배우인지를 한국 관객에게도 증명한다. 농사를 짓고, 요리를 준비하고, 음식을 먹는 별다를 것 없는 장면에서도 미묘한 감정을 담아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능력은 흔하지 않다. 미우라 타카히로, 마츠오타 마유, 키리시마 카렌과 코모리 마을 사람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다. 특히 '엄마' 역의 키리시마 카렌은 몇 장면 등장하지 않지만, 묘한 분위기로 눈을 잡아 두는 연기를 한다.
"뭔가 실패를 하고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되돌아 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일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일지도 몰라. 같은 곳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물론 옆으로도….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힘이 나더구나." 사계절을 다 보내고 나서야 엄마의 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 조금 알게 된 것은 그가 그 시간을 '잘'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러닝타임은 이치코가 '겪은' 그 끼니들을 짧게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