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께서 나이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듭니다.'
취업 준비생 최모(25)씨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부모님에게 감사 편지를 드렸다. 편지를 읽은 최씨의 어머니는 순간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감동했지만 읽다 보니 문장이 너무 깔끔한 게 아들 글솜씨 같지가 않았다. 실제 이날 최씨가 쓴 어버이날 편지는 인터넷을 뒤져 내려받은 '편지 샘플'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버이날용' 편지 샘플을 베껴 쓴 최씨는 "부모님과 평소에 편지를 주고받지 않아 어색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창작해 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편지 예문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 2년 차인 직장인 김모(여·29)씨도 최근 시부모님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편지를 끄적이던 김씨는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 10분여 만에 '시부모용 어버이날 편지 예문'을 찾았다. 김씨는 "작년에는 '남편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썼지만 매년 같은 말을 반복할 수도 없지 않으냐"며 "많은 사람이 이미 썼던 편지 내용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어버이날을 맞은 8일 주요 포털 사이트엔 '어버이날 편지 예문'이라는 문구가 검색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어버이날 편지 예문은 1000~1500원만 내면 쉽게 내려받을 수 있고, 무료로 편지 내용을 볼 수 있는 곳도 적지 않다.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 리포트 공유 사이트에도 '부모님께 쓰는 편지입니다. 리포트로 냈었는데 A+ 받았습니다~ 가슴에 바로 와 닿는 감동적인 말 많이 적었어요'라는 소갯글과 함께 A4용지 한 장 반 분량의 편지가 올라왔다.
편지 예문이다 보니 개인이나 가정의 특수한 상황을 담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내용이 많다. '아버님, 어머님. ○째 며느리입니다. 두 분의 며느리가 된 지도 어느덧 ○년이나 흘렀는데 아직도 두 분께 편지를 쓰는 것이 떨리고 설렙니다. (중략) 두 분 모처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째 며느리 올림'과 같이 자기 사정에 맞게 빈칸을 채우기만 하면 어버이날 편지가 완성되는 식이다. 한 서식 제공 사이트에 올라온 이 편지 예문은 1만3000여명이 내려받았다.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보내는 사람·받는 사람'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어버이날 편지도 등장했다. 한 웹사이트는 시부모님용, 친정용, 성인 자녀용, 학생 자녀용 등 유형별로 각기 다른 편지 예문을 제공한다. 영문 버전도 있고 '숙연함' '투정' '감사의 마음' 등 편지 내용별로 정리한 예문도 있다. 이런 세태를 접한 부모 세대는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신현규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젊은 세대들이 주로 SNS로 소통해 단문에 익숙하고 부모와 대화가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들면서 솔직하고 진심 어린 편지글 쓰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