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燕山君·재위 1494~1506)이 돌아왔다.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1995)과 드라마 '장녹수'(1995), 영화 '왕의 남자'(2005)로 대중을 만났던 조선 10대 국왕이 10년 만에 다시 스크린으로 불려 나온 것이다. 21일 개봉하는 '간신'은 그 포악한 시대를 간신의 시선으로 복기한다.
'간신'은 임금에게 조아리는 척하면서 그를 조종했던 '왕 위의 왕' 이야기다. 채홍사(採紅使)로 임명된 임숭재(주지훈)가 미녀 1만명을 강제 징집하면서 연산군(김강우)을 쥐락펴락한 연산군 11년을 배경으로 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에서 세련된 연출력을 보여준 민규동(45) 감독은 6일 "간신의 시점으로 임금을 둘러싼 권력 다툼과 허망한 마음속 폐허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산군과 임숭재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세자 융(나중의 연산군)은 친어머니 윤씨가 폐출당한 사실을 모르고 자라났다. 할머니 인수대비는 융을 혹독하게 대했고 그래서인지 음험하고 괴팍한 구석이 있었다. 임금이 된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았고 무오사화·갑자사화를 통해 엄청난 인명을 죽였다.
'간신'의 주인공 임숭재는 병조판서 임사홍(천호진)의 아들이다. 임사홍은 1504년 연산군에게 폐비 윤씨 사건을 밀고해 대참사(갑자사화)를 일으킨 배후였다. 임숭재는 전형적인 간신인 아버지와 달리 왕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그를 사실상 꼭두각시처럼 부린 간신이다. 민 감독은 "사극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는 셈이라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았다"며 권력의 희생양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흥청망청
채홍사는 여자와 말[馬]에 집착했던 연산군이 미녀와 준마를 채집하도록 명한 관리였다. 임숭재는 미녀와 기생('운평'이라 불렀다)을 선발하고 그중에서 등급이 높은 운평('흥청'이라 불렀다)을 궁중에 들여 연회를 거들게 했다. 양반집 자제는 물론 여염집 부녀자, 천민까지 가리지 않고 잡아들이니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영화에서 임숭재는 미녀 단희(임지연)를 직접 수련시키고 질세라 장녹수(차지연)도 명기 설중매(이유영)를 불러와 단희를 견제한다. 흥청으로 인한 부조리도 많았는데, 흥청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원흉이라 하여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생겼다.
성군보다 악인이 매력적인 법이다. 극작가 겸 연출가 이수진씨는 "나쁜 왕마저 쥐락펴락하는 권력의 배후를 그린 이야기는 요즘 정치랑 맞는 측면이 있다"며 "로마제국의 칼리굴라와 네로부터 색을 밝히고 반란으로 쫓겨난 왕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이라고 덧붙였다.
◇'어벤져스'의 대항마?
'간신'은 개봉 13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대항마로 꼽힌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은 "'간신'은 40대 이상 남성과 30대 이상 여성이 호응할 만한 사극이라는 점, 미술에 대한 감각이 좋은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점, '연산군의 성 스캔들'로 관심을 끄는 성인용 영화라는 점에서 '어벤져스'와는 시장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가 민 감독 말마따나 연산군의 광기와 내적인 웅장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이수진씨는 "사극을 보는 관객은 권력에 밟히는 자, 피하는 자, 아니면 그 권력 안에서 자기를 찾는 자 등으로 감정이입을 할 대상이 여러 갈래"라며 "역사에 더해진 상상력이 얼마나 사실 같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