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새벽 4시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이 왕위 계승권을 기존에 정해져 있던 이복동생 무크린에서 조카인 무함마드에게 넘기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후계자가 죽거나 병들어 왕위를 이어받지 못할 상황이 아닌데도 후계자가 교체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우디 왕위 계승은 1953년 이븐 사우드 초대 국왕이 사망한 이후 그의 아들 형제들 사이에서 이뤄져 왔다. 살만 국왕이 이 관례마저 깨고 자신의 다음 세대인 조카를 제1 후계자,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제2 후계자로 정한 것이다. 이 같은 사우디 왕가의 정치적 지각변동의 요인은 무엇일까.
이는 살만 국왕을 비롯해 이번에 후계자로 된 두 왕자 모두 초대 국왕의 여덟째 부인 수다이리 왕비의 핏줄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살만 국왕이 수다이리 왕비의 여섯째 아들이고, 제1 후계자 무함마드는 수다이리 왕비 넷째 아들의 아들인 것이다. 1969년 수다이리는 사망했지만, 그가 낳은 아들과 그 자식들이 사우디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것이다. 살만 국왕에 앞서 수다이리의 첫째 아들인 파흐드는 사우디 5대 국왕도 역임했다. '사우디는 죽은 여덟째 왕비 수다이리의 나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번 후계자 교체는 왕권을 '수다이리파(派)'에 집중하고 그 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 볼 수 있다.
사우디 권력 파벌이 왕비를 기준으로 형성된 이유는 어머니를 다르게 둔 왕자가 너무 많은 사우디 왕가의 특징 때문이다. 이븐 사우드 초대 국왕은 수다이리를 포함해 아내를 공식적으로만 22명 뒀고, 이를 통해 100명에 달하는 자녀를 낳았다. 왕자만 40여명이다. 초대 국왕이 건국 초기 국정 안정을 단기간에 이루기 위해 아라비아반도 부족장의 딸과 결혼을 하며 정치적 결탁을 했는데, 이 때문에 왕자와 공주들이 같은 아버지를 두고도 남남처럼 경쟁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수다이리는 왕비 서열 중위권으로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올리기 어려웠으나, 아라비아반도의 정치 1번가라고 할 수 있는 나즈드 지방 출신 부족장 딸인 점 등을 내세워 '왕비들 간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