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음력 정월 26일 법정(法頂) 스님의 추모법회 때에는 일반적인 다례제나 추모법회와는 다른 특별한 음식이 오른다. '간장 국수'. 다시마와 버섯으로 연하게 국물을 내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 지극히 간단한 음식이다. 법정 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에 머물던 시절부터 즐겼던 음식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에게도 내주곤 했던 게 간장국수. 법정 스님의 담백한 삶을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매년 스님의 추모법회에 오르는 것도 이런 상징적 의미가 더해져서다.
법정 스님뿐 아니라 스님들의 국수 사랑은 유별나다. 노스님들은 몸이 편찮을 때 상좌(제자)들이 "스님, 죽 끓여왔습니다"하면 "됐다, 생각 없다" 하시다가도 "스님, 국수 삶아왔습니다"하면 "그래?"하며 일어나신다고 한다. 오죽하면 '고수와 국수를 싫어하는 스님은 좀 이상한 사람'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스님들은 왜 국수를 좋아할까? 불교계에선 과거 어렵던 시절, 절에서 맛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별미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사찰 음식이 웰빙음식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절에선 직접 기른 채소와 밥 외에는 이렇다 할 먹을거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수챗구멍에 빠진 콩나물이나 쌀을 본 노스님들이 주워 와서 "시주 무서운 줄 모른다"고 불호령을 내렸다는 전설이 각 사찰마다 전해 내려올까. 당시엔 의식주 전체가 최소한이었다. 대강백(大講伯)으로 꼽히는 무비 스님은 "우리가 옛날에 수행할 때에는 이불도 없어서 좌선(坐禪)할 때 깔고 앉았던 좌복(방석)을 배에 얹고 맨바닥에서 그냥 잤다"고 회고할 정도다. 노스님들이 죽을 싫어하는 것도 양식이 부족하던 시절, 쌀을 아끼기 위해 하도 자주 먹었기 때문.
그런 생활 속에서 가끔씩 먹는 국수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생활의 활력소 역할을 했던 것. 최근 원로 스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온 한 스님은 "여행 중 노스님이 10인분 국수가 나왔는데 '어디 한번 먹어볼까' 하시더니 혼자서 거의 다 드시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렇게 스님들이 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절집에서 국수의 별명은 '승소(僧笑)'다. 국수 생각만 해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는 것. 지난 2011년 조계사 경내에 문을 연 국숫집은 아예 옥호(屋號) 자체가 '승소(僧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