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

시각장애 학생이 반드시 특수학교에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네덜란드·스웨덴 등 유럽 다수 국가의 모든 시각장애 학생이 일반 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다. 미국도 의무교육 대상 시각장애 학생 90% 이상이 또래 비장애 학생과 같이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시각장애 자녀를 일반 학교에 취학시키려는 부모가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막상 부모가 자녀를 일반 학교에 보내려 해도 참고용 학습 자료는커녕 교과서조차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부분 교과서가 국정 위주에서 검·인정 위주로 바뀌면서 학교별 선택 교과서를 점자, 확대, 디지털 매체 등 시각장애 학생이 읽을 수 있는 매체로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시각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교과서를 책임지는 교육기관이 없다는 사실은 해당 학생과 학부모들을 더욱 좌절하게 만든다. 자녀에게 필요한 교과서를 학교에 요청하면 교육청에 책임을 미루고, 교육청에 요청하면 국립특수교육원에 떠넘기며, 국립특수교육원에 문의하면 교과서는 시·도 교육청 소관 업무라고 해명한다.

교육부는 그 소속 기관인 국립특수교육원이 시각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교과서와 학습 자료를 제작·지원하는 '원스톱' 기관 역할을 수행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도교육청이 소수 학생을 위해 고도의 전문성과 큰 비용을 요하는 시각장애 학생용 교과서를 제작·지원할 인프라를 각각 구축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교육 자치가 뿌리내린 미국조차 연방 교육부가 시각장애 학생용 교육 자료를 직접 지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교육청이 관할 시각장애 학생을 위해 요구할 경우, 교과서 출판사는 연방 교육부가 지정한 국가 교수·학습 자료 접근성 표준(NIMAS)에 따라 변환한 후 켄터키주 루이빌 소재 미국시각장애인인쇄원의 국가 교수·학습 자료 접근성센터(NIMAC)에 해당 교과서 디지털 파일을 납본해야 한다. 각 지역에 있는 장애인용 자료 제작 기관은 NIMAC에 납본된 파일을 활용해 점자, 확대 또는 디지털 형태 교과서를 제작·제공한다.

교과서조차 적절한 매체로 수업 일정에 맞게 제공하지 못한다면 시각장애 학생의 일반 학교 통합 교육은 불가능하다. 국립특수교육원 같은 국가기관이 전국 모든 시각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교과서 등을 제작·지원하는 것은 장애 학생들의 자아실현과 사회 통합에 기여하고자 시행 중인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의 목적을 달성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