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살인죄로 전주교도소에 수감됐던 무기수가 ‘귀휴(歸休)’에서 복귀하지 않고 잠적한 지 일주일 째다. 현상금 1000만원에 경찰 1계급 특진까지 걸렸지만, 지난 21일 이후 지금까지 무기수 홍승만(47)의 행방은 묘연하다. 한때 부산으로 잠입한 것이 확인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귀휴 제도에 대한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1996년 수감 생활을 시작한 홍은 모친 병환을 이유로 한 달 전 교도소 밖 외출을 신청, 이달 17일부터 4박 5일간 외출을 허가 받았다. 1962년 생긴 이른바 ‘귀휴’ 제도에 따른 것이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죄수가 출소 전 특정 사유에 따라 잠시 휴가를 얻어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현행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6개월 이상 복역한 수감자 중 형기의 3분의 1(무기수는 7년)이 지나고 교정 성적이 우수한 모범수는 4가지 사유에 따라 귀휴를 허가 받을 수 있다. 가족 등이 위독한 때, 외부 의료시설에 입원해야 할 때, 천재지변 등으로 가족 혹은 본인에게 회복할 수 없는 재산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위해 필요한 때 20일 이내 ‘일반 귀휴’가 가능하다.
일반 귀휴의 네 번째 사유인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배우자 직계존속의 회갑일·고희일, 직계비속 입대나 해외유학, 각종 시험 응시 등까지 사유로 인정된다. 홍승만은 가족(어머니)이 위독하다는 이유로 일반 귀휴를 얻어 교도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같은 일반 귀휴 외에 가족 등이 사망한 때나 직계비속의 결혼 때는 5일 이내 ‘특별 귀휴’도 가능하다.
귀휴 대상자는 2008년 말 대폭 확대됐다. 최소 복역 기간이 1년에서 6개월로 단축돼 대상자가 크게 늘었다. 일반 귀휴 기간이 10일 이내에서 20일 이내로 늘어났고, 특별 귀휴 사유에 형제·자매의 사망이 추가됐다.
귀휴를 인정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다. 교도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귀휴 심사위원회(위원 6~8명)가 출석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는데, 신청자의 50% 정도가 귀휴를 얻어 나온다. 그 숫자는 매년 약 1000여명에 이른다. 휴일이나 위원회 소집이 곤란한 때는 위원회 심사 없이도 교도소장이 귀휴를 허가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수형자가 한 번 귀휴를 얻으면 귀휴 기간 동안 그들을 감시·통제하는 장치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귀휴지 외 지역 여행 금지, 유흥업소·도박장·성매매업소 등 출입 금지, 피해자 또는 공범·동종범죄자 등과 접촉 금지 등이 규정돼 있지만 감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도관 동행은 ‘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규정해 의무 사항도 아니다. 2일 이상 귀휴인 경우, 관할 경찰관서 장에게 귀휴 사실을 통보하도록 돼 있지만, 이 또한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다. 전주교도소 측은 “가족이 보증하는 조건으로 (홍승만의) 귀휴를 허가했다”고 밝혔다.
즉, 교도소를 나간 날부터 하루 한 번 이상 해야 하는 형식적인 전화 보고만 제외하면 수형자는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되는 셈이다. 홍승만도 복귀 당일인 21일 오전 6시30분쯤 교도소에 마지막 연락을 취한 뒤 행방을 감췄다. 특히 귀휴 때는 교도소에서 보관 중인 영치금도 찾아갈 수 있는데, 홍도 어머니 병원비에 쓴다며 250만원 가량을 찾아갔다.
귀휴가 문제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에도 포항교도소에서 모범수로 분류돼 귀휴를 떠난 수형자가 귀소 시각을 어기고 돌아오지 않다가 고향 기차역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지난해 충남 보령에서는 수십억원대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죄로 징역을 살던 전직 국회의원 B(80)씨가 귀휴 기간 중 또 다시 뒷돈을 받는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2005년에는 20대 죄수가 탈옥 후 지인들에게 “귀휴를 나왔다”며 사흘 동안 도주 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다. 귀휴는 이밖에도 과거 전통적으로 조직폭력배들이 잠시 교도소에서 나와 조직을 재규합하고 옛 부하들에게 충성 서약을 받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주요 인물에 대한 귀휴가 사회적 이슈가 된 적도 있었다. 2003년 민혁당 사건으로 수감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노모 병환으로 일주일 귀휴를 얻어 나왔다. 2006년에는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으로 수형 생활을 하던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이 딸의 자살로 5일간 귀휴를 받았다. 그는 사건 한 달 전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신청한 형집행정지가 불허되자 “영어의 몸으로 식에 가고 싶지 않다”며 귀휴를 포기한 바 있어 그의 귀휴가 세간에 화제가 됐다. 2011년에는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48)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숨졌지만, 법무부와 청송교도소 측은 부친 장례를 위한 귀휴를 불허하고 가족과 전화 통화만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