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은 참사 1주기인 4월 16일까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시간 동안 농성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조속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한다는 명분을 내건 이 농성을 통해 세월호 유족들은 정부와 정치권에 자신들의 뜻을 전하겠다고 했지만, 유족의 바람과 달리 1주기를 전후해 광화문 광장 일대는 불법 폭력 시위로 얼룩졌다.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는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은 이 시위를 보며 "이제는 세월호를 정치에서 건져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자기의 뜻을 집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다. 더구나 대형 참사의 피해자 격인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에겐 이런 자유가 한껏 보장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지난 11일 세월호 유족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이 서울 도심에서 주도한 시위 이후 세월호 관련 시위가 불법·폭력 양상을 띠면서 18일에는 물대포까지 동원한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시위대가 경찰버스에 낙서해 놓은 반정부 구호 - 지난 18일 세월호 시위대가 스프레이로 낙서해놓은 경찰 버스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서 있다. 이날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는 오후 4시 30분쯤 서울 광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거리를 점거하고 경찰 버스를 부수는 등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 이날 시위에선 ‘박근혜 퇴진하라’ 등 정치 투쟁성 구호가 난무했다.

서울 도심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불법 폭력 시위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되살아나는 것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에 대해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 세월호 1주기를 전후해 벌어진 광화문 일대 시위에선 "청와대로 쳐들어가자" "박근혜 대통령 퇴진" "과도 정부 구성" 등 반(反)정부 투쟁 구호를 듣는 게 어렵지 않았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세월호 인양과 시행령안 폐기 문제에 대해 정부·여당이 여러 차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음에도, 과격 시위 양상이 반복되는 건 유족들의 진의(眞意)와 무관하게 세월호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세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사고 발생 직후부터 좌우(左右) 내지 여야(與野)로 갈라져 갈등을 겪어왔다. 그런데 여기에도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찾기보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제삼자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4월 20일 진도에 모인 실종자 가족 수백명이 '신속한 실종자 수색'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겠다고 나섰을 때 한 실종자 가족은 "앞에 나가서 청와대로 가자고 소리치는 사람들은 진짜 유족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침착하다는 얘기였다. 한 달 뒤 청계 광장에서 시작된 세월호 추모 촛불 집회에는 반정부 시위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각종 좌파 단체가 모여 "박근혜는 학살자다" "박근혜는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같은 달 세월호 유족들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몰려갔을 때도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옛 통진당, 정의당 등 단골 시위꾼들이 가족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정치권도 초유의 대형 안전사고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정치적 득실을 저울질하며 사태 악화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은 국민을 단결시켜 국난을 극복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정파 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유족들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농성하자 야당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그곳에 직접 천막을 설치했다. 그는 지난 4일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며 삭발했다. 정부·여당 역시 참사 후폭풍이 불러올 정치적 타격을 우려해 유족 설득 등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족들이 정부와 여당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는 정부·여당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가 정치화하면서 국론도 분열되고 있다. 실제 인터넷 공간에선 일반 네티즌들도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 사항이나 최근 빚어진 광화문 일대 시위에 대해 극단적으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장덕진 교수(사회학과)는 "우리 사회에 이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치 쟁점화해 다투는 것은 소모적"이라며 "한국 사회가 세월호 문제를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