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중동팀장

이태원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많다. ‘외국음식’은 중식과 일식, 햄버거와 피자가 전부인줄 알던 시절부터 다양한 국적의 요리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존재를 알렸고, 더러는 주류(mainstream)에 편입되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멕시코 음식이나 미국식 브런치가 그렇다. 반대로 시간이 흘러도 이태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중동 음식도 그 중 하나다.

사실 중동 음식은 유럽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터키음식’으로 알려진 케밥은 ‘카밥’이란 아랍어 이름의 중동 음식이기도 하다. 종류만 해도 300가지가 넘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저스’에서 지구를 구한 슈퍼히어로들의 대화에도 등장하는 샤와르마(슈와마)도 카밥(케밥)의 일종이다. ‘중동의 된장’이라 불리는 후무스(으깬 병아리콩에 마늘과 오일을 섞은 음식)도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중동 음식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데에는 문화적 이질감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이슬람 급진주의 색채가 중동지역과 관련된 이슈 전반에 덧씌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중동팀장과의 만남을 위해 8일 이태원의 한 중동 음식점을 찾았다. 인터뷰를 위해 며칠 전부터 식당을 예약한 수고가 무색하게 식당은 점심시간임에도 텅 비어있었다. 문을 연지 7년 가까이 됐으니 기본적인 맛이나 서비스의 문제는 아닌 듯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식 볶음밥인 캅사와 병아리콩을 미트볼 모양으로 동그랗게 빚어 튀겨낸 팔라펠, 양고기 카밥 등을 시켜놓고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중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 시작은 중동에 대한 이질감을 두려움으로 바꿔놓고 있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 IS의 잔혹한 모습이 우리 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자신들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 같은 모습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뭘까.

“IS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반군(反軍)’이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바트당’ 잔존세력을 중심으로 과거처럼 수니파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이슬람 급진주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수동영상 유포나 SNS를 통한 세력 규합도 정권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부다. 종교나 문화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본질을 놓치기 쉽다. 국가간 권력투쟁 구도로 보면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 IS 격퇴를 위한 작전에 매일 9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IS의 근거지인 이라크와 시리아의 주변국들이 IS와 힘들여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이라크의 크루드족 민병대와 시아파 민병대만 열심히 싸우는 모양새다.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의 입장에서는 IS가 추구하는 이슬람 강경 보수주의가 그리 나쁘지 않게 보일 수 있다. 터키는 IS보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크루드 반군에 느끼는 반감이 더 크다. IS를 제거하면 아사드 대통령과 크루드 반군을 돕는 셈이라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사우디와 또 다른 수니파 국가인 카타르도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사드 대통령도 정권 유지를 위해 IS를 이용하고 있다. IS가 없었으면 국제 공조를 통해 축출 됐을지도 모르지만 IS가 더 나쁜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면서 큰 위기를 넘겼다. 이런 이유로 아사드가 IS 포로들을 풀어줬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에는 IS와에 싸움에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도움을 받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 중동 외교의 양대 축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인데 두 나라 모두 핵협상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의 갈등은 종파 차이보다 사우디의 대내외 상황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우디의 동해안에 시아파가 많이 살고 있어 ‘아랍의 봄’ 이후 동요가 많았다. 사우디와 인접한 바레인에도 시아파가 많아서 소요가 일어나면 사우디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남쪽의 예멘 후티 반군도 시아파다. 사우디에는 예멘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이들을 움직이는 게 이란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이 커지면 위험하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이란의 핵무기 보유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간의 공동 이해관계가 성립된다.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적대관계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미국을 구심점으로 한 동맹관계에 가깝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와 미국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원외교에 대한 공통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닌가?

“물론이다. 중동과 미국의 우호관계는 문화적 유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석유자원의 원활한 수급이라는 목적에 기반을 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스라엘을 잘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냉전시대에 왕정국가인 사우디와 요르단이 소련의 남하정책으로 인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데 역할을 한 것도 일정부분 기여를 했다. 2001년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이 냉전을 대신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미국과 사우디가 맹방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 미국이 사우디의 왕정이나 문화를 좋아해서는 아니다.”

이권형 팀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SOAS)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슬람권 경제 전문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합류하기 전 기아경제연구소에서 자동차산업을 연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이란의 정치 권력구조와 주요 정파 별 경제정책’과 ‘이슬람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구조와 위험요인’ 등이 있다.

찰기가 전혀 없어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캅사의 식감을 제외하면 양고기 카밥과 팔라펠 등 다른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강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동국가 출신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어느새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화는 경제분야로 이어졌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을 계기로 중동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청년들이 중동 시장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현지 상황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예전처럼 건설 분야 일자리가 10만개씩 있던 시대는 지났지만 의료와 ICT, 금융, 여행∙호텔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중동지역이 위험하다고 생각해 잘 알아보지 않는 경우도 있고, 계약직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청년들 사이에서는 경력 단절의 두려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부분이 해결 되면 중동 진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기회를 잡으려면 포지션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어 말하기는 물론이고 매니저 급의 경우는 라이팅(쓰기) 능력도 수준급이어야 한다. 영어 외에도 관련 분야에서 전문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중동 순방의 큰 성과 중 하나는 이슬람 급진주의 이미지에 가려진 본연의 문화를 부각시킨 것이라 생각된다. 아부다비의 모스크나 사우디의 박물관 등 순방 기간 TV를 통해 보여진 현지의 모습이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데 일정부분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본다.”

-아프리카 자원외교로 일찌감치 재미를 본 중국은 서방의 대 이란 경제제재를 틈타 이란의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중동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동에서 일본, 중국과 비교해 중동에서 우리나라의 위상과 이미지는 어떤가.

“일본의 자본과 기술력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저렴한 가격에 물량공세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지만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이란의 경우도 경제제재로 인해 중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중국 기업의 제품이나 시공능력 등에 대한 전반적인 품질 만족도는 높지 않다. 가격이 저렴하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가 어정쩡한 위치에 놓인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중간 위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도 있다. 보건의료가 대표적이다. 과거 중동 산유국들은 이 분야에서 유럽에 많이 의존했다. 소득도 눈높이도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서민들의 복지혜택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유럽의 의료기관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곳을 찾는 수요가 생겨났다. 수준 높은 의료기술과 병원 운영 노하우를 갖춘 우리의 포지션과 잘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핵협상이 타결될 경우 이란 시장의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이란은 중동에서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다. 무엇보다 인구가 8000만에 달해 내수가 받쳐준다.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농업도 잘 된다. 카스피해 인근에서는 이모작이 가능하다. 또한 중동에서 유일하게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한다. 자동차 한 대에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관련 산업과 서비스업 기반도 갖추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6월말에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제재가 풀리기까지 최대 1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그 만큼 이란 시장 진출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 많다는 의미도 될 수 있지만 미국과 중국이 선수를 칠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 이란에 대한 제재가 일시적으로 완화됐을 때 프랑스가 대규모 사절단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은 협정 위반이라며 대대적으로 문제 삼았다. 미국 입장에서는 코카콜라나 자국 석유화학 업체 등이 가장 먼저 이란에 진출하길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란시장 진출을 준비해야 할까.

“민간 차원에서 인적 교류와 문화교류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화 등 예술분야의 교류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걸그룹은 현지 정서에 맞지 않겠지만 사극이나 난타공연 등은 중동국가에서도 인기가 높다.(몇 해 전 국내 드라마 ‘주몽’이 이란에서 80%가 넘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수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물품을 제외하면 허용이 되기 때문에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실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저유가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국과 사우디 모두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우디와 미국이 힘을 합쳐 러시아와 이란을 손보려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원유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사우디와 미국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쨌든 미국의 셰일원유 생산으로 공급이 늘어난 것이 유가하락의 원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우디의 입장에서는 감산한다고 유가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시장 점유율만 낮아지는 상황이어서 감산에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에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는 만큼 현재의 흐름이 미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가 변동으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중동에 진출한 우리기업이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은 뭔가.

“문화 차이에 더해 제도적 문제도 있다. 사우디의 경우 ‘스폰서 제도’가 있어 현지 합작 브로커를 끼고 진출해야 하는데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 직원의 일정 부분을 현지인으로 채워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비자 발급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현지인의 경우 언어나 문화적으로 동화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 등 서구도 그런 부분을 감수하면서 현지 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현지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중동의 지도층 자녀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을 하는 경우가 많아 어릴 때부터 같이 공부하며 형성된 네트워크가 이후에도 외교나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친분 없이 만나자 마자 사업이나 공무 관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하는 우리 상황과는 다르다. 외교 공무원의 경우나 기업의 지역 담당자가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다.”

-중동 국가 중 여행지로 한 곳을 추천한다면?

“지난해 12월 학술회의 참석을 위해 요르단 산악도시 페트라에 다녀왔는데 날씨도 좋고 아름다웠다. 중동에 다녀온다고 하면 주위에서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일부 분쟁국가를 제외하면 여행에 문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