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6개월 전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요즘 팔·다리가 자꾸 저려와요."

지난 16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북쪽으로 80㎞ 떨어진 라스 알 카이마 지역. 5층짜리로 아담하게 지어진 '셰이크 칼리파 왕립 전문병원'을 찾은 오므렛(63)씨는 "최근엔 다리 힘도 빠진다"고 한국인 의사에게 말했다. 재활의학과 강보성 교수가 영어로 증상을 묻자 현지 간호사가 아랍어로 환자에게 물은 뒤, 환자의 답변을 영어로 강 교수에게 다시 전달해 주는 식이었다. 강 교수는 "그동안 한국에서 진료를 받고 온 아랍에미리트 환자가 1400명이 넘는데, 이 환자들이 현지에서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어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셰이크 칼리파 왕립 전문병원에서 16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강보성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심장 전문의인 장지민 부원장은 이날 심장병 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다른 지역 병원에서 심장병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이 병원으로 옮겨 온 60대 환자였다. "임시 개원한 지 두 달 만인 지난 1월에 처음으로 심근경색 환자를 수술했는데,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병원 진료를 맡긴 아랍에미리트 정부도 바짝 긴장했어요.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현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 주민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장 부원장의 말이다.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6월 미국·독일 등의 유명 병원들과 경합한 끝에 5년간 아랍에미리트 왕립병원의 위탁운영권을 따냈다. 작년 11월 임시로 문을 연 서울대병원은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지금 아랍에미리트에서 '의료 한류(韓流)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 국내에서 치료하던 단계를 넘어 직접 우리 병원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병원 입구에 '서울대학교병원 운영(Operated by SNUH)'이란 대형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20만㎡ 부지에 지상 5층, 지하 1층으로 지은 이 병원(248개 병상)은 전체 직원 600여명 중 서울대 산하 5개 병원에서 파견된 의사·간호사·사무직원이 180명에 이른다.

서울대병원은 인근 병·의원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치료가 어려운 고난도 환자들을 상대로 암·심장·뇌혈관 치료에 중점을 두는 3차 전문병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미 심장·유방암·폐절제 수술을 40여건 했다. 오후 4~5시에 문 닫는 다른 병원들과 달리 오후 6시까지 진료한다. 서울대 의대 학장을 지낸 임정기 교수와 황용승 교수(전 어린이병원장) 같은 저명한 의료진이 현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교육도 시킨다. 이런 열성적인 태도에, 최근 UAE 정부의 병원 평가에서도 환자 안전, 고객 만족 등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병원은 진료과목 대기실마다 남녀 칸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여자 환자들은 남자 의사에게 진료받거나 남자 약사에게 복약 지도받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5년간 1조원의 예산으로 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성과에 따라 매년 70억~80억원을 추가로 받는다. 인사 담당인 박상용씨는 "낯선 곳이지만 한국보다 1.5배 많은 연봉에 국제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구내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제공받고, 자녀들을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어 가족을 동반한 직원들도 많다"고 했다. 이들을 지켜본 이 병원의 무스타파 국제관계 본부장은 "서울대병원처럼 위탁운영되면 병원 내 의사 소통이 잘되고 일처리가 빨라진다"며 "앞으로 왕립병원에 이어 민간병원들의 위탁도 점차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성명훈 병원장(전 서울대 강남센터원장)은 "우리 병원 성과에 따라 의료 한류의 확산 여부가 달려 있어 책임감이 무겁다"며 "전체 진료과가 모두 완비되는 다음 달에 개원 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