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 종로구청 근처 공사장 현장사무실. 컨테이너 안에 있는 문을 열고 계단을 통해 지하 16m 바닥까지 내려갔다. 지하는 지열 때문인지 초여름처럼 후끈했다. 안전모와 방진마스크를 쓰고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50m 정도 걷자 굴착면 끝이 나왔다. 벽면을 만지자 축축한 흙이 만져졌다. 흙을 조금 긁어내 냄새를 맡아봐도 악취는 나지 않았다. 공사 관계자는 "벽면을 적신 것이 하수관에서 흘러나온 오수가 아니라 지하수이기 때문"이라 했다. 반대쪽 벽면은 폭 1m 정도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뿌연 물이 흘러나오다 조금씩 맑은 물이 나왔다. "처음 나온 물은 지반 강화 작업에 사용된 것이고 나중에 나온 건 지하수예요. 미세한 모래 알갱이 20∼30개가 섞여 들어온 게 보이죠?" 기자와 동행한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물을 용기에 담아 보여줬다.

이곳은 KT 광화문빌딩과 교보빌딩 사이 도로 아래, 지하철 광화문역과 종각역을 잇는 지하보도 공사(약 260m 구간) 현장이다. 위쪽 왕복 2차로 도로 20m 구간엔 군데군데 균열이 생겼고, 도로 양쪽 인도는 걷기 불편할 정도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박 교수는 "지금처럼 콘크리트 등으로 지하수를 막는 차수(遮水) 공사가 완료되기 전에는 지하수가 빠른 속도로 강하게 흘렀을 것"이라며 "그때는 지하수가 작은 모래 알갱이가 아닌 많은 양의 토사를 끌고 들어왔을 것"이라 했다. 지하보도를 둘러싼 지반의 흙이 조금씩 지하수에 쓸려 공사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주변 지반의 지지력이 약해진 것이 도로 침하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동행한 전문가들은 "더 이상 지반이 내려앉을 위험은 없다"고 거듭 설명했지만 철근 등이 드문드문 보이는 천장이 무너질까 두려웠다.

지난 9일 서울 용산역 앞 주상복합아파트 공사 현장 지하에서 홍준기(팔 뻗은 이) 기자가 전문가와 함께 지하수를 막는 차수벽 틈으로 지하수와 토사가 흘러 들어오는지 살펴보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지난 2월 20일 이 공사장 바로 옆 인도에 싱크홀이 생기며 보행자 2명이 추락하는 장면. 당시 싱크홀은 이 공사장 차수벽을 구성하는 철근콘크리트 기둥 사이 틈으로 지하수가 주변 흙을 쓸고 들어오는 바람에 옆 인도 아래 지반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발생했다.

지난 9일 서울 용산역 앞 한 주상복합아파트 공사 현장. 계단을 통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지하 16m까지 이어지는 굴착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드는 지하에서 동행한 전문가와 함께 지하수를 막는 차수벽을 꼼꼼히 살폈지만 지하수가 유입되는 곳은 없었다. 일부 벽면이 젖어 있었지만 지하수가 흘러 들어오는 것은 아니라 했다. 이날은 차수벽 뒤로 방수 소재를 추가로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일반 공사 현장보다 더 세밀하게 지하수를 막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2월 20일 이 공사장 옆 인도에 직경·깊이 3m의 싱크홀(sinkhole·지반 침하)이 생기면서 보행자 2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차수벽에 난 틈으로 지하수가 인도 밑의 토사를 쓸고 들어온 탓에 인도에 싱크홀이 생긴 것이다. 당시 공사장 굴착면 바닥에는 지하수와 고운 모래가 섞여 뻘처럼 퍼져 있었다고 한다.

광화문 지하보도의 경우 굴착 공사가 끝나고 차수 공사가 시작되기 전 시간에 지하수와 토사가 현장 안으로 유입됐고, 용산역 앞 공사 현장은 이미 설치된 차수벽에 생긴 틈 사이로 역시 지하수와 토사가 흘러든 것이다. 관련 전문가와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 굴착 공사 때 완벽하게 방수 조치를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광화문 지하보도나 용산역 앞 공사 현장에서와 같은 일은 어떤 굴착 현장에서든 일어난다"고 했다. 대신 주변 토양 상태와 지하수 수위 변화 등에 따라 공사를 즉시 중단시킬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주장이다. 용산역 앞 현장의 경우 지하 16m 이상까지가 자갈·모래·점토로 이뤄진 연약 지반이다. 또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하수 수위가 지하 10m에서 14m까지 낮아졌다. 박창근 교수는 "이런 상황이라면 지하수가 어디론가 이동하면서 지반 강도 등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며 "우리도 미국이나 싱가포르처럼 지하수 수위가 일정 정도 변화하면 공사를 멈추게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공사를 멈추고 주변 지반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면 싱크홀 발생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싱크홀 발생의 주원인은 하수관 손상이지만, 규모가 큰 위험한 싱크홀들은 주로 인근 공사장 굴착 공사 때문에 생긴다. 2010년 이후 가로 2m, 세로 2m 이상 대형 싱크홀은 서울에서 16개 발생했는데, 이 중 62.5%인 10개가 인근 굴착 공사와 관련 있었다. 작년 8월 송파구 석촌 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가로 2.5m, 세로 7m, 깊이 10m로 차량이 빠졌다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현재 서울에서는 대규모 굴착 작업이 필요한 지하철 9호선 3단계 구간(9.14㎞)과 우이~신설 경전철(11.4㎞) 공사가 진행 중이다. 상·하수도, 도시가스, 전기, 통신 관련 굴착 공사도 올해 현재까지 허가된 것만 6400건이다. 올해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건축 공사 중 지하 2층 또는 지하 10m 이상까지 굴착하는 곳은 119곳이다.

서울시는 대형 싱크홀 발생을 막기 위해 이달부터 지하 2층 또는 지하 10m 이상 굴착공사가 예정된 곳에 대해 굴토심의를 하고 있다. 주변 토질과 지하수 상태 등을 고려해 굴착 공법이나 지반 보강 방법 등을 미리 지자체가 심의하는 제도다. 2005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건축법시행령·건축조례가 개정될 때 사라졌던 서울시 차원의 굴토심의를 부활시킨 것이다. 최근 서울시 싱크홀 발생 현장을 수차례 살펴본 조성하 한국지반공학회 연구위원은 "굴토심의가 굴착 공사장 인근 지반 침하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며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더라도 서울시가 '안전' 관련 규제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