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한 소방관이 부산 중고자동차매매단지 화재 현장 진화 작업 후 구석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그을음에 뒤덮이고 물에 흠뻑 젖은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은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랜다. 장화도 벗지 못하고 담벼락에 걸터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끼니를 때운다. 7시간 동안 화마와 싸운 소방관의 얼굴엔 검댕이 묻었고 머리는 온통 땀으로 젖어있다.

‘컵라면 소방관’으로 언론에 보도된 사진 속 주인공은 부산진소방서 수정119안전센터 소속 홍치성(47) 소방장. 그는 지난 3일 오전 부산 연제구 거제동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나갔다가 부산경찰청이 이 사진을 올리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그는 화재 사고 당일 본지와 통화에서 “작업하다가 배고프면 잠깐 라면도 먹고 그러는데, 일상적인 일일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수방화복이 있긴 하지만 넉넉지 않아 하루에 여러 번 불이 나면 오염된 방화복을 그대로 입고 출동해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다른 소방관들도 홍 소방장과 비슷한 고충을 토로한다. 서울의 한 소방관은 “화재 신고가 잦은 날에는 급하면 진압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내근직원의 방화복을 빌려 입고 출동한다”며 “두 달 넘게 개인 방화복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한 두 번도 아니고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일선 소방관들을 사지로 내모는 격”이라고 했다. “화재현장에 나갔다 오면 그을음과 소방수를 온몸에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데, 이걸 재정비할 때까지 여벌의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며 “남의 방화복을 입고 출동하면 익숙하지 않고 어색해 다급한 화재 현장에서 움직임이 굼뜰 때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26일 경기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부상자를 건물 밖으로 옮기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긴 건 지난 2월 소방당국이 인증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방서에서 방화복 1만9000여벌을 회수한 뒤 대체방화복을 아직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대원의 경우 2벌의 특수방화복을 지급받도록 규정돼 있는데, 이번 수거 조치로 인해 한 벌 밖에 방화복을 구비하지 못한 일부 소방관도 생겼다. 이 때문에 급한 경우 일반 방화복을 입거나 동료의 옷을 빌려 입기도 한다는 것이다.

섭씨 290도의 열에 견디는 일반방화복과는 달리 특수방화복은 390도의 열에도 견디는 재질로 만들어진다.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에겐 생명과도 같은 장비인 셈이다.

국민안전처는 전체 보유한 방화복이 4만여벌이어서 현장에 소방관이 출동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선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소방관들은 토로한다. 전국 소방공무원은 4만여명이고 이 중 화재현장 출동 소방관은 약 9000명 수준인데, 일반 소방공무원에겐 방화복 1벌, 현장 출동 소방관에겐 2벌이 지급돼야 한다. 전체적으로도 1만벌가량이 부족한 셈이다. 특히 현장 출동 소방관 중 방화복이 수거된 뒤 아직 지급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 고충을 겪는 사례가 생긴다고 한다.

지난해 5월 26일 경기 고양종합버스터미널 상가 화재 현장에서 한 여성 소방관이 물을 마시고 있다. 소방복이 검댕으로 시커매져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 길게는 두 달가량 더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방복의 경우 조달청에 계약을 의뢰하고, 계약이 끝나더라도 납품까지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민안전처 소방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수거한 방화복 1만9000여벌 가운데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소방서가 자체 예산으로 구입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빠르면 한 달, 길면 두 달 정도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방화복 구매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가 50대 50으로 구성되는데 국비 마련에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관들은 불만과 울분은 쏟아내고 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한 소방관은 “요즘 내가 누구를 위해 소방관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납품 비리를 저질러 뒷돈을 챙기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현장에서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고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최근엔 12년차 소방관이라는 사람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방화복 없이 생활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대체 세금 걷어 어디다 쓰는 것이냐”고 직격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