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설립자인) 앨런 박사를 기념하는 2015년."(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제중원의 공공의료 정신을 계승·실천하겠습니다."(서울대병원)
지난달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연건동 서울대병원에는 제중원 설립을 기념하는 서로 다른 현수막이 내걸렸다. 올해 설립 130주년을 맞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濟衆院)의 적통(嫡統)이 자신이라며 경쟁에 나선 것이다. 두 대학병원은 제중원 설립 기념식도 별도로 가질 계획이다.
서울대병원은 3일부터 9일까지 주말을 제외한 5일 동안, 세브란스 병원은 10일 하루 동안 학술행사를 포함한 제중원 설립 130주년 기념식을 연다. 1885년 미국 선교의사 앨런이 고종에 건의해 세워진 제중원의 설립일을 서로 다르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소속됐던 외아문(현 외교부)의 업무일지 사료에 근거해 고종이 백성에게 근대병원 설립을 알리는 방문(榜文)을 붙인 4월3일을 제중원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반면 세브란스병원은 앨런이 작성한 '제중원 1차연도 보고서'를 토대로 환자 진료를 시작한 4월10일을 제중원 설립일로 잡고 있다.
제중원 성격을 놓고도 두 병원 입장이 맞서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제중원이 앨런 박사 요청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조선 정부로부터 운영권을 전면 이양받은 미 북장로교 선교회가 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로부터 거액을 기부받아 현재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했다는 점을 들어 자신들이 제중원을 계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고종의 재가에 따라 만들어졌고 건물 부지와 예산 등을 조선 정부가 부담한 '국립병원'이란 점에서 오늘날 국립대병원을 대표하는 서울대병원이 진짜 계승자라고 맞서고 있다.
두 병원의 기념식 행사에는 이런 양측의 팽팽한 대립이 묻어난다. 서울대병원은 3일 '근대의학 도입 과정에서 제중원의 의의' '편지 사료로 본 국립병원 제중원' 등을 주제로 학술강좌를 여는 등 제중원이 '국립병원'의 시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9일 열리는 서울대병원 사진전에서 제중원 시절부터 서울대병원까지 옛 사진들을 전시해 우리 병원의 뿌리가 제중원임을 보여줄 것"이라 했다.
반면 세브란스병원 학술심포지엄에서는 '제중원 설립과 선교사들 역할' '국립병원 계승론의 허상' 등을 다루고, 기념식 행사에는 앨런 박사 증손녀, 제중원 원장이었던 에비슨 박사 후손이 방문한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의 토대인 제중원 창립 정신을 되새기자는 의미"라고 했다.
제중원 130주년을 둘러싼 양측의 기싸움은 작년부터 가열돼왔다. 작년 말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가 각각 '제중원 130'이란 문자와 제중원 사진을 넣은 2015년 달력을 만들면서 맞붙었다. 지난 2월엔 정종훈 연세대의료원 교목실장이 '서울대 병원의 역사 왜곡'이란 제목으로 신문 기고문을 내자, 일주일 뒤 김상태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가 '제중원의 진실-연세대 정종훈 교수에 답한다'는 제목의 반박 글을 내며 맞받아쳤다. 지난달 초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치료를 계기로 세브란스병원이 '제중원 후신은 세브란스병원'이라고 홍보하면서 논쟁이 재점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