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고령인 만 69세 11개월에 대통령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은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후 5년 만인 1994년 11월 자신이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으로 진단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당시 미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성명에서 “알츠하이머에 대한 인식 제고와 치료법 연구를 위해 아내인 낸시, 국립 알츠하이머병 재단과 함께 ‘로널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레이건은 발병 10년 후인 2004년 만 93세로 사망했다.

그런데 공식 발표와 달리,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1981~1989)에 이미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 31일 보도했다. 애리조나주립대 비사르 베리샤 교수와 줄리 리스 교수가 알츠하이머저널 최신호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8년 동안의 기자회견 내용을 분석한 결과,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자주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비교연구를 위해 레이건과 후임자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취임 당시 64세)의 임기 중 기자회견 발언을 전수 조사했다. 참모진이 미리 써준 원고가 아니라 기자회견의 즉석 문답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결과, 레이건에겐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났다. 첫째, 사람 이름이나 지명(地名) 같은 고유명사를 콕 찍어 얘기해야 할 대목에 ‘그것(thing)’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우리 말로 하면 ‘거시기’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둘째,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동어반복이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늘어났다. 반면 후임자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해 90회 생일 때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등 치매 증상 없이 여전히 정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이 임기 중 치매에 걸렸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레이건의 막내 아들 론은 지난 2011년 ‘100세의 내 아버지’란 책에서 “임기 3년차에 이미 치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밝혔지만, 장남인 마이클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