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1일 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한 길가. 전봇대 앞을 서성이던 오원춘(당시 42세)이 지나가던 20대 여성을 자신이 세들어 살던 집으로 납치, 성폭행하려다 살해했다. 그는 시신을 280조각 내 비닐봉지 14개에 나눠 담았다. 그가 인육(人肉)을 유통하려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1심은 “오원춘이 살인 후 시신을 훼손한 이유가 인육 유통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우발적 범행”이라며 무기징역으로 감형했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3년이 흐른 지난 31일 밤, 그 길가는 여전히 스산했다. 오원춘이 살았던 집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자전거 도난방지용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열쇠 수리’‘배관 교체’ 같은 스티커 수 십 개가 철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미 색이 바랜 것으로 봐선 1년 이상은 돼 보였다. 문 안쪽으로 보이는 파란 쓰레기봉지와 건자재 더미가 집을 더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인근 A 부동산의 조모씨는 “그 집이 어떤 집인지 다 아는데, 누구한테 소개해 줄 수 있느냐”며 “집 주인은 따로 있는데 팔지도 못하고 와보지도 못하고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오원춘이 숨어서 피해 여성을 기다렸다는 전봇대. 오원춘이 살인 사건을 저지른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지난 31일 모습이다.

오원춘이 살던 집은 피하거나 돌아가기도 어려운 왕복 2차선 도로가에 있었다. 20대 여성이 너비 3m도 채 되지 않는 인도에서 ‘지옥’으로 끌려가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 같았다. 오원춘이 숨어서 피해 여성을 기다렸다는 전봇대도 그대로 서 있었다.

사건 이후 현장 주변엔 가로등(보안등)이 늘었다고 했다. 오원춘이 살던 집 앞을 포함해 지동사거리에서 못골 중앙사거리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변에 보안등이 10대가 설치됐고, 골목과 이면도로 모퉁이에도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진 뒤 내린 골목의 어둠까지 밝히기엔 부족해 보였다.

경찰에 붙잡힌 오원춘.

오후 8시, 보안등에 불이 들어왔지만, 도로변 상가가 문을 닫으면서 인적이 눈에 띄게 줄었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군것질하던 학생들도 오후 6시 이후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대로변 뒤쪽 주택가엔 정적이 흘렀다. 가로등을 제외하면 가정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거의 없었다. 멀리서 사람 그림자라도 나타나면 반가움과 두려운 마음이 함께 들었다. 마침 이날은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사건이 일어난 집 앞 길에는 폐쇄회로(CC)TV가 한 대 있었다. 사건 당시 오원춘이 피해자를 집으로 끌고 가는 장면을 담았던 카메라다. 카메라가 더 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길에서 만난 김모(30)씨는 “시에서 이곳(지동)을 시민안전특구로 지정하고 CCTV 여러 대를 설치했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달라진 점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살인마 오원춘’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한 남자 행인이 “됐어요, 묻지 마세요”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엔 3년이란 시간이 짧은 듯했다. 20년째 지동에서 살고 있다는 주민 한모(43)씨는 “그 집이 큰길 가에 버젓이 보이는데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느냐”고 했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골목길과 이면도로, 보조등이 설치됐지만 아직 어두운 곳이 많다.

작년 11월 박춘봉의 토막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지동 주민들은 다시 한 번 악몽을 떠올려야 했다. ‘제2의 오원춘’ 사건으로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곳은 지동 서남쪽에 붙어있는 팔달구 매교동이었다. 도보로 30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오원춘의 이름이 회자 된 것. 지동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조금 잠잠해졌다 싶었는데 그 건(박춘봉 사건)이 터지고 나서 다시 흉흉해졌다”며 “가뜩이나 중국인들이 많은 마을인데 대하기가 편하진 않다”고 했다.

불안을 느끼는 주민이 늘자 마을 초입엔 ‘외국인 자율방범대’도 생겼다. 수원 중부경찰서가 후원한다고 한다. 2013년 5월 1일에 발족한 뒤 지난해 7월 지동사거리 지동초등학교 맞은편으로 옮겨왔다. 16명의 자원봉사자가 한 주에 두 번 오후 6~10시에 마을을 순찰한다. 이광렬 방범대장은 “오원춘 사건이 일어난 후에 외국인과 마을 사람들이 순찰대를 조직했다”며 “매일 하지는 못하지만, 저녁시간에 마을을 돌며 주민들의 불안을 덜어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