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D요정(料亭) 앞 골목은 경계가 삼엄했다.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한옥 양식 건물이라 특히 눈에 띄는 이곳은 이달 19일 감사원 4급·5급 공무원이 한국전력 관계자들에게 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감사원 중간 간부들은 이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접대부들과 인근 모텔로 자리를 옮겼다가 경찰과 여성가족부 성매매 단속에 적발돼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 직후 D요정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부 취재진까지 모여들기 시작하자 아예 40대 남자 직원 한 명을 요정 기와 대문 앞에 세워놨다.
이 직원은 요정 앞 골목을 지나가는 차량을 일일이 확인했고 손님 외에 ‘수상한’ 사람이 오가는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했다. 한 주민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요정 근처 쓰레기통 쪽으로 다가오자 “무슨 일로 왔느냐. 당장 저리 가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기도 했다. 매우 예민한 상태인 듯했다.
단골을 통해 따로 접촉한 D요정 관계자는 “그날(단속 당일) 이후부터 단골들 발길이 줄어 죽을 맛”이라며 “업종을 바꿔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영업을 계속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 언제든 연락하고 찾아달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실제 영업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 토요일 오후 요정 앞 마당은 고급 승용차들로 꽉 들어찼다.
이 집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연면적이 1652㎡(약 500평)에 달한다. 10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특실이 있고, 30여개 방마다 꽃실·청실·연실·금실·매실·난실·국실 등의 이름이 붙었다. 고급 한옥 인테리어로 꾸민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주로 기업 관계자들이 공무원이나 외국인 바이어들을 접대할 때 자주 찾는 장소로 알려졌다.
단골들은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골프 접대를 한 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한다. 식사비는 1인당 35만~40만원에 이른다. 큰 자개상 위에 대게찜, 도미찜, 생선회 등 30가지 넘는 요리가 푸짐하게 올라온다. 술은 양주가 1인당 1병씩, 소주와 맥주 같은 다른 술은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저녁시간대 단지 ‘먹고 마시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는 많지 않다. 40대 이모씨는 “평일 저녁에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다 한껏 취기가 오른 다음 이곳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런 경우, 음식에는 거의 손도 못 댄다”고 했다.
이곳이 접대 장소로 인기 있는 이유는 음식이 아닌 요정 특유의 분위기다. 특히 한복을 차려입은 채 옆에서 술을 따르고 함께 얘기를 나누는 접대부들 역할이 크다고 한다. 룸살롱처럼 손님들이 이른바 ‘초이스(선택)’를 하면 접대부가 옆에 앉는다.
최근까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곳을 찾았다는 한 기업 관계자는 “서울 강남 고급 룸살롱에서 볼 수 있는 대단한 미인들은 아니지만, 속살 비치는 얇은 한복을 입고 시중 드는 친구들을 보면 처음엔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고, 일행에게 제대로 된 접대를 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면접을 통해 뽑는 D요정 접대부들 대부분은 20~27세. 대학 졸업자가 많지만, 직장인이나 대학생도 상당수라고 한다. 회사에서 퇴근하거나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이곳에 나와 돈을 버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자격 요건을 보면 ‘영어, 일어 가능자들을 특별 우대한다’는 문구도 있다. 그만큼 접대 대상으로 외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얘기다.
단골들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룸살롱처럼 밴드를 불러 노래를 부르거나, 가야금 병창 같은 국악 연주도 들을 수 있다. 별도로 고용된 국악 전공자들이 직접 연주한다고 한다. 이런 추가 서비스에 접대부들에게 팁까지 주면 1인당 식비가 50만원을 훌쩍 넘는다.
자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접대부와의 ‘은밀한 2차’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주로 손님과 접대부가 함께 요정에서 나와 숙박업소로 이동해 성관계를 갖는 식이다. 요정이 위치한 역삼동 일대는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와 더불어 각종 숙박업소도 밀집해있다.
이번에 적발된 감사원 중간 간부들도 식사 접대가 인근 숙박업소에서의 성 접대로 이어진 사례다. 이들은 D요정에서 술을 마신 뒤 차를 타고 약 500m 떨어진 모텔로 이동한 다음 접대부 2명을 다시 만나 방에 들어갔다. 이처럼 손님과 접대부가 시차를 두고 따로 이동하기 때문에 경찰이 표적을 삼아 따라가지 않는 이상 성매매 현장을 잡기란 쉽지 않다고 경찰 관계자는 말했다.
이번 단속 이후 손님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D요정에 “괜찮느냐”는 단골들의 영업 문의 전화는 계속 걸려온다고 한다. 또 강남 고소득 직장인들 사이에서 D요정이 입소문까지 타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인근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장모씨는 “그 요정이 이렇게 회사 가까운 데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 “룸살롱 같은 곳은 괜히 싫고, 동료들끼리 ‘월급날이나 주식으로 돈 좀 벌면 같이 한 번 가보자’는 얘기도 나온다. 2차만 안 가면 문제 될 게 없지 않느냐”고 했다. 회계사 박모(32)씨도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에서만 봐오던 요정에 호기심이나 묘한 환상 같은 게 남아있어 관심 갖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