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9호선 2단계구간(신논현~종합운동장)이 개통한 후 첫 출근일인 30일 오전 8시1분. 염창역에서 종합운동장 방면의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문 앞 양쪽으로 10명씩 서있던 줄이 한꺼번에 뒤엉켰다. 앞쪽 두 사람이 열차 안에 간신히 몸을 실었을 때 녹색 조끼를 입은 지하철 안내요원이 문을 막아섰다. “다음 차를 이용해주세요.” 이미 차에 탄 사람들도 문 위쪽 광고판을 손으로 잡은 채 간신히 몸만 실은 상태였다. 9호선이 ‘지옥철’, ‘가축수송열차’로 불리는 이유를 알 만했다.
다음 열차가 도착하면서 ‘지옥문(hell gate)’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오전 8시 9분 급행열차가 들어와 다시 문이 열리자 앞 열차의 풍경이 다시 펼쳐졌다. 줄의 맨 앞쪽에 있던 몸은 뒤편 인파에 밀려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갔다. 옆에 선 20대 여성 승객의 화장품 냄새, 막 뛰어와 숨을 헐떡였던 30남자 승객의 땀냄새, 40대 남자 승객의 옷깃에서 나오는 담배냄새가 뒤섞여 고약했다.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고개를 돌릴 정도의 공간만 허용됐다. 손은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다음 정차역인 여의도역에서 문이 열렸을 때, 몸무게 80kg의 기자는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안쪽에서 내리려는 사람들과, 길을 터주기 위해 함께 비켜주려던 사람들이 공간을 만들어 내면서 벌어진 결과였다. 다시 타려고 문위에 발을 걸쳤을 때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먼저 발을 쫙 뻗었다. 결승선 문턱에서 순간 발을 뻗어 금메달을 땄던 김동성 선수처럼. 양쪽에서 밀고 들어온 사람들에 치여 다시 한 번 지하철 밖으로 튕겨 나와야 했다. 문이 닫혔다. 숨을 고르는 10~20초 사이 노란 안전선 뒤편에는 열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혼잡도가 240%에 이르는 9호선의 출근 시간 모습이었다. 지하철은 오전7시30분부터 8시 30분까지가 ‘피크타임’이다. 열차 하나에 160명이 탔을 경우 혼잡도를 100%로 계산하는데, 승객들의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돼 서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 정도로 보면된다. 240%이면 열차 한 량에 380명이 탄 수준이다.
다음 급행열차에서 다시 밀려 열차에 몸이 실렸다. 답답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교통약자 안내석이 마련돼 있으니…자리를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은 쓸데없어 보였다. 이 시간에 교통약자는 9호선 급행열차를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속터미널역에 들어서자 열차에 공간이 생겼다. 서있던 사람들이 어깨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염창에서 종합운동장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젊은 사람도 진이 빠질 정도였다.
그런데 종합운동장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는 송모(30)씨는 “보통 월요일의 모습과 비슷하다. 특별히 사람이 더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게 예전 모습이라니. 당초 이날 연장구간이 개통으로 9호선은 극심한 혼잡을 빚을 것으로 예상됐다. 다행히 예상보다 혼잡이 덜 했던 건 출근길 시민들이 혼잡을 피해 일찍 출근하거나, 버스 등을 이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시도 지하철 혼잡을 완화하기 우해 무료 출근 전용버스 100대를 운영하는 등 안간힘을 썼다.
문제는 앞으로다. 출근길 시민들이 평소처럼 출근하고 버스도 늘어나지 않는다면 9호선의 극심한 혼잡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문제가 생긴 건 신논현 역에서 종합운동장까지 9호선의 2단계구간이 개통되면서 수요는 늘었지만, 지하철 운행 횟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왕복 540회 운행하던 열차는 480회로 60회 운행을 줄였다. 출근시간에도 편도 36회 운행하던 열차는 32회만 운행한다. 1편당 8~10량 짜리인 다른 지하철과 달리 9호선은 열차 한 편당 4량이어서 더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서울시는 일단 내년 9월에 20량을 투입하고, 2017년 말에 50량을 추가한다고 하지만, 1년 반 뒤에 가능한 얘기다. 충분히 예상된 혼란에 서울시가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합운동장역에서 만난 박모(52)씨는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