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도 AIIB에 참여하기 위한 구실이 필요해서 중국의 입장 변화를 줄곧 모니터링했다. 막판에 AIIB (사무국이 아닌) 이사회에 투자 승인권을 줄 것이라는 정보 등이 큰 역할을 했다."

27일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결정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누가 어디에 투자 결정을 내리는지는 AIIB와 같은 투자은행의 핵심이다. AIIB가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정도의 투자만 하더라도 향후 연간 100억달러(11조원) 규모의 투자 결정을 내리는데, 그 권한을 회원국이 포진한 이사회에 주겠다는 의미다.

이런 정보를 입수한 정부는 지난 2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AIIB 가입을 최종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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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와 위안화, 누가 더 셀까 - 27일 한국 정부는 중국이 주도하는 첫 국제 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하겠다고 정식 통보했다.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는 서울의 한 환전상 입간판처럼 미국과 중국의 금융 패권 다툼이 AIIB를 통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7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AIIB 참여를 설득한 후, 정부는 8개월 동안 AIIB에 참여할 명분을 찾기 위해 장고(長考)해 왔다.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한국의 AIIB 가입을 견제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불투명한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국제금융기구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압박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한국 정부가 앞으로도 'AIIB식 딜레마'에 빠지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AIIB, 중국이 주도하는 첫 국제금융기구

국제금융 질서는 2차 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라는 이름으로 유지돼 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이 축이다. 아시아에선 일본이 최대 주주인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가입하면서 제조업 분야에서 글로벌 체제에 진입했고, 이제는 글로벌 금융 질서 재편을 노리고 있다.

중국은 일본 주도 ADB의 대항마로 AIIB만 출범시키는 게 아니다. 중국이 주도하고 러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참여하는 신개발은행(NDB)이 내년에 설립된다. 개도국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은행을 겨냥하고 있다. 5년 안에 자본금을 1000억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며, 본부는 상하이(上海)에 두기로 했다. 이와는 별도로, IMF에 맞서는 위기대응기금(CRA) 프로젝트, 중남미 지역에 대한 250억달러 규모의 투자기금 계획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중국 입장에선 영향력 확대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딜레마의 연속이다. 내년엔 중국이 추진하는 NDB 가입 문제가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이 중국의 고립을 목표로 추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참여 여부도 고민거리다. 중국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아직 TPP 가입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 AIIB 지분율 극대화가 관건

당장 한국 정부의 현안은 AIIB에서 지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정부가 AIIB의 창립 회원국이 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지분율을 높이면 AIIB에서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창립 회원국이 되지 못하면 향후 AIIB가 증자(增資)할 때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을 얻거나, 탈퇴한 나라의 지분을 이어받아야 해 AIIB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1959년에 창설했지만 우리나라는 2005년 뒤늦게 가입한 미주개발은행(IDB)에서 지분이 0.002%에 불과하다. 당시 IDB를 탈퇴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지분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AIIB는 역내(域內)국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에 75% 혹은 80%의 지분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역내국에 할당된 지분 중 GDP 등 경제력을 기준으로 한국의 지분이 결정된다. 6월까지 AIIB 참가국은 지분 협상 등을 벌일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GDP 규모로 계산해 보면 한국의 지분율은 5%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호주가 AIIB에 참여할 경우 GDP 순위로 볼 때 역내에서 4위(중국·인도·호주·한국 순) 정도 된다"고 했다.

AIIB는 향후 자본금을 1000억달러로 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단 올해 말 출범할 때는 자본금 500억달러로 시작될 전망이다. 또 500억달러 중 100억달러만 미리 AIIB에 내고, 400억달러는 AIIB가 요청할 때 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국의 지분을 5%라고 가정하면, 한국이 내야 하는 초기 납입 자본금은 5억달러(5500억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