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8월 어느날. 지중해에 석양이 깔리자 호화요트 갑판에 긴 치마를 입은 재클린 케네디(당시 39세)가 나타났다. 그녀와 선상(船上) 식탁에 나란히 앉은 사람은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당시 62세). 양(羊)고기를 재클린의 입에 넣어주며 오나시스는 즐거워했다. 옆에서 탱고를 연주하던 공연단의 멤버가 이 로맨틱한 장면을 악기 안에 숨겨둔 카메라로 연신 찍고 있었다. ‘몰래 카메라’를 찍던 이 사나이는 실제로는 신문기자였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여사와 그리스의 억만장자 오나시스의 결혼을 특종보도한 기자가 올해 오나시스 사망 40주기를 맞아 둘의 결혼을 취재한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영국의 BBC매거진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둘의 결혼을 처음 세상에 알린 전직 기자 니코 마스토라키스(74)의 육성을 최근 보도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지 5년이 지난 1968년 아테네에 재클린이 자주 나타났다. 마스토라키스는 그녀가 공식석상이긴 했지만 오나시스와 몇 차례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둘이 사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졌다. 결정적 ‘증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마스토라키스는 오나시스가 그의 호화 요트 크리스티나호(號)에서 파티를 연다는 소식을 듣자 선상 공연단원으로 가장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공연단장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그는 부주키(기타 모양의 그리스 전통 현악기) 안에 소형 카메라를 숨겨 크리스티나호에 승선하는 데 성공했다. 기대한 대로 배 위에 재클린이 나타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마스토라키스는 재클린과 오나시스의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밤이 무르익어 재클린이 침실로 들어가자, 술에 취한 오나시스가 자랑하듯 “내 아내와 사랑을 나누러 들어간다”고 말하고 따라들어갔다. 마스토라키스는 “아내라는 단어를 확신을 갖고 발음한 걸로 봐서 결혼이 임박했다는 걸 직감했다”고 BBC매거진에 말했다. 당시 크리스티나호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미 상원의원도 있었다. 마스토라키스는 기혼(旣婚)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금발의 스웨덴 여성과 로맨스를 나누는 장면도 목격했다. 특종을 하나 더 얻은 셈이다.
하지만 마스토라키스는 그를 수상하게 본 에드워드 케네디의 수행원에 의해 신분이 탄로나 배에서 쫓겨났다. 아테네로 돌아온 마스토라키스는 사진 원본을 모두 경찰에 압수당했다. 당시 그리스 군사 정부가 에드워드 케네디의 요청을 받아들여 증거를 없애려 한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기사도 사전 검열했다. 그 결과 마스토라키스는 에드워드 케네디의 애정행각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재클린과 오나시스의 결혼 소식만 알릴 수 있었다.
기사가 나간 지 두 달만에 실제로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려 세기의 특종이 됐다. 오나시스는 결혼 7년 뒤인 1975년 지병으로 사망했고, 연속해서 두 남편을 사별한 재클린은 1994년 암으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