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남모(32)씨는 지난해 말 외할아버지 상(喪)을 치르느라 사흘간 회사를 비웠다. 그런데 장례를 치르고 출근했더니 인사팀에서 “개인휴가를 3일 쓴 것으로 처리하겠다”고 알려왔다. 남씨는 “상을 치르고 왔는데 연차휴가에서 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지만, 회사에선 “친조부는 경조휴가를 주지만 외조부는 안 된다”는 말만 했다고 한다. 남씨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똑같은데 왜 이런 차별을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친조부모상과 외조부모상을 당한 직원에게 휴가·경조비를 달리 지급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이런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당시 인권위가 62개 그룹 대표 계열사와 중견기업을 조사했더니 외조부모 경조사에 친조부모의 경우보다 휴가와 경조비를 더 적게 지급하는 기업이 절반 이상인 41곳에 달했다.
그럼에도 친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상을 당한 직원에게 휴가 일수 등에서 차별을 두는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과거 국내 기업들은 친조부모의 경우 직원이 상주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어도 외조부모의 경우 상주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의금·휴가 일수를 차등 지급해왔다. 가족구성원과 관련한 법적 책임이나 권한을 부계(父系)에만 부여하는 호주제가 2005년 폐지되면서 이런 관행이 조금씩 개선됐지만 아직 상당수 기업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차와 기아차는 친조부모상의 경우 3~5일의 휴가를 주지만, 외조부모상에는 이틀만 휴가를 준다. GS의 한 계열사는 친조부상에 휴가 3일에 기본급 30%를 부의금으로 주지만, 외조부상에는 휴가 하루를 주고 부의금은 지급하지 않는다.
경조사 휴가는 각 기업이 사내 내규로 결정하는 것이어서 국가가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 기업들이 이런 차별을 두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호주제 잔재가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기업엔 이런 차별이 거의 없다. 독일계 회사를 다니는 고모(29)씨는 “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4일간 경조휴가를 줬다”며 “회사에선 친조모와 외조모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다니엘김(34)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빠 쪽인지, 엄마 쪽인지 따져 묻는 건 굉장히 실례”라고 했다.
물론 이런 차별을 개선한 기업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친조부모나 외조부모상에 동일하게 3~5일간의 경조휴가와 부조금, 장례물품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