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반월공단 인사팀장 등 中企업체들의 하소연]
젊은이들 참을성 없고 카페같은 직장만 찾죠
채용공고 별 효과없어… 아예 파견업체에 맡겨
"아마 소설 같은 얘기로 들릴 겁니다. 우리 회사는 만약 신입으로 생산직 10명을 뽑는 계획을 세우면 일단 40~50명까지 합격시켜요. 30~40명은 취직해도 금세 그만둘 걸 알기 때문이죠."
16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만난 A 제조업체 인사팀 김준용(가명) 과장은 "요즘 중소기업들은 이렇게 고무줄처럼 신입을 뽑는다"고 했다. 작년 8월엔 합격 통보를 받고 일하러 나온 첫날, 점심밥만 챙겨 먹고 사원증 내던지고 간 신입 직원도 있었다고 했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참을성 없는 젊은이들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김 과장은 주장했다.
"퇴직하겠다는 신입 직원들과 상담해보면, 카페 같은 깨끗한 분위기의 서비스업종에 가서 일하겠다는 친구가 많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곳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잘 견디지 못해요."
더 큰 문제는 경기가 나빠지면서 이렇게나마 뽑던 신입 사원들조차 뽑지 않는다는 점이다. 휴대폰 부품 업체인 이 회사는 지난해 휴대폰 판매가 줄어 원도급 실적이 나빠지자 휘청댔다.
2013년 전체 직원 수가 1000명을 넘었던 이 제조업체는, 현재 직원 수가 당시의 3분의 2 정도로 줄었다. 생산직 직원들만 준 게 아니고, 사무직도 신입으로 뽑아놓으면 10명 중 7명은 나간다고 했다. 김 과장은 "실적이 나빴던 지난해엔 연봉도 동결되고, 사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며 "생산직보다 그 정도만 덜 할 뿐 사무직 청년도 줄줄이 나가기는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찾은 또 다른 제조업체에선 청년 채용을 아예 파견업체에 맡겼다. 파견직 근로자를 최근 두 달 새 250명쯤 뽑았다고 했다. 이 회사 인사팀장은 "우리가 홈페이지에 '인사 공고' 내봐야 찾아보는 젊은이도 없고, 생산직이라고 오지도 않는다"면서 "정부가 운영하는 일자리 중개 시스템 '워크넷'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은 갈 곳 없는 고령자나 외국인이 대부분이라 파견업체 직원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소기업이 사람 뽑기 어렵다는 이유로 파견업체 직원을 데려와 쓰는 악순환이 반복되니, 청년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의 질(質)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이라고 하면, 대기업 비정규직은 66→중소기업 정규직은 54→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7(2013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수준이다.
이현옥 고용부 청년고용기획과장은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춰 중견,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다리가 부실하다 보니 청년들도 중소기업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일자리 철새족'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펙왕 백수'부터 파견직까지… 청년들의 하소연]
시간낭비할 필요없죠, 미래 안보이니 이직…
난 토익 965점인데 서류전형 왜 떨어져요?
친구들 사이에서 이른바 '스펙왕'으로 통하는 권예지(가명·26)씨는 작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도 매일 학교 도서관을 간다. 오전 9시에 자리 잡고 앉아 취업 원서 쓰고, 원서 쓴 기업에 대해 공부하고, 취업 스터디 3개를 하면 하루가 금세 간다.
서울의 4년제 사립대 경영학과를 최우등(학점 4.23)으로, 그것도 조기 졸업한 권씨는 스펙이 화려하다.
"저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요. 학교 다닐 때 꼬박꼬박 장학금 받았어요. 아빠 엄마한테 손 안 벌리고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어 썼고요. 토익 965점에, 영어 회화도 원어민 수준으로 해요. 학교 다니면서 G20 자원봉사단, 캄보디아 해외 봉사도 하면서 스펙 쌓았어요. 외국계 벤처기업에서 인턴도 했고, 카페·빵집부터 영어 과외까지 사회 경험도 풍부한 편이에요." 그런데도 권씨는 2013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80여곳 기업에 원서를 썼는데, 서류 심사에서 통과시켜준 데가 10%도 안 된다고 했다.
"얼굴도 남들만큼은 생겼고, 뚱뚱하지도 않아요. 근데 왜 취직이 안 될까요? 뭘 더 갖춰야 나를 뽑아줄까요."
이렇게 되묻는 권씨는 기회조차 못 얻는 현실이 우울하고, 뭔가 억울한 마음이 자꾸 든다고 했다. 권씨처럼 일자리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청년 실업자는 2월 현재 11.1%.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에 도달한 상태다.
권씨처럼 무직 상태는 아니지만, 지금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의 현장에서 '미래가 안 보인다'고 불안해하는 '호프 푸어(hope poor·희망 빈곤자)'들도 상당하다.
금속업체·섬유업체 등 각종 중소기업들이 오밀조밀 모인 반월공단. 인쇄회로기판(PCB)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는 최정우(가명·25)씨는 이날 방진복을 갖춰 입고 물끄러미 작업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회로기판에 기계 드릴이 구멍을 뚫으면 온종일 그 옆에 서서 불량품이 없는지 검사하는 게 최씨가 맡은 일이다.
"하루종일 서 있으면 다리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밥 먹는 시간은 40분밖에 안 되고…. 근데 몸 힘든 것보다 더 힘든 건 미래가 안 보이는 일에 시간 낭비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자꾸 든다는 거예요."
이 회사로 파견된 지 18일째라는 최씨는 시간당 최저임금인 5580원을 받고, 매일 오전 8시 반에 출근해 이르면 오후 5시 반에 퇴근한다. 잔업이 있는 날은 오후 8시 반까지 연장 근무를 한다. 최씨는 "미래가 안 보인다. 희망이 없다" "공장 일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금 더 일해보다가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되면 다시 직장을 옮길 생각이라고 했다. 최씨는 "나라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