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때 일본군의 자살 폭탄 공격을 뜻하는 '가미카제(神風)'. 거기 투입된 전투기 '제로센(零戰)'이 최근 일본 대중문화의 '핫 아이템' 이다. 1970년대 파푸아뉴기니 밀림에서 발견된 제로센을 2008년 일본 기업인이 구입해 6년간 보관하다 지난해 일본에 반입했다. 다음 달 실제로 띄우겠다며 웹사이트를 만들어 모금 이벤트를 벌였다. '일본인의 제로센, 다시 일본의 하늘에.' 2월까지 1018명이 2344만엔을 냈다. 현재 전문업체가 정비 중이다. 현황이 수시로 사이트에 올라온다.
이런 붐의 배경엔 가미카제를 그린 영화 '영원의 제로(永遠の0)'가 있다. 이 영화는 지난달 작품상 등 일본아카데미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원작자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59)는 아베 신조(安倍晋三·61) 총리와 절친한 우익 소설가다. 원작에서 그는 일본 병사 개개인이 얼마나 순수하게 싸웠나 누누이 강조한다. 소설 속 특공대원은 '상쾌하게 웃으며' 미군 함정을 들이받는다. 원폭 투하 소식을 듣고도 '죽어서 조국을 지킬 수 있다면 죽으리라' 다짐한다. 침략에 대한 반성은 없다. TV도쿄는 지난달 이 소설로 개국 50주년 특집극을 방영했다. 시청률이 10%에 육박했다.
가미카제 연구의 권위자인 오누키 에미코(大貴惠美子·사진)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는 5일 본지 인터뷰에서 "위험한 현상"이라고 했다. "햐쿠타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던 현실을 마치 아름다웠던 것처럼 그렸다"고 했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패전이 명확한 상황에서 의미 없는 임무를 강요당했어요. 생존자들은 '개(犬)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증언했어요. 제로센을 다시 띄우자는 건 시대착오예요. 거기 돈 낸 이들이 전쟁사를 제대로 알고 냈는지 의문이에요."
오누키 교수는 10년 이상 가미카제 특공대의 일기·편지를 분석하고 유족을 인터뷰했다. 상당수가 명문대 출신이었다. 마음속으로 군국주의를 비판했지만, 패전 직전 속수무책 징집됐다. 교토대 출신 하야시 다다오(林尹夫)는 막사에서 일기에 "조국애(祖國愛)의 감격은 이제 없다"고 썼다. 그는 항복 21일 전 미군에 격추됐다.
역시 교토대 출신 하야시 이치조(林市造)도 항복 4개월 전 죽었다. 그는 출격 직전 홀어머니에게 "슬플 땐 우세요"라는 편지를 썼다.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뒤 "오니시 중장(가미카제 작전 입안자)은 죽어야 한다"고 내뱉었다. 어머니는 88세로 죽을 때까지 군부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들 대다수는 일왕을 위해 출격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출구가 없다'는 체념이 '그렇다면 죽자'는 각오가 됐다. 깊은 곳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죽는가' 하는 번민이 출렁거렸다. 그런 가미카제가 왜 새삼 뜰까. 오누키 교수는 "우경화로 모든 걸 설명할 순 없다"면서 "일본 대중이 자신감과 이상주의(理想主義)를 상실한 데 원인이 있다"고 했다.
"일본 사회는 풍요롭지만 에너지가 없어요. '어떤 직업을 갖겠다'는 계획은 있어도, '어떤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이상은 없어요. 장기 불황으로 자신감도 잃었어요. 삶의 목표를 잃은 젊은이들에게 제로센은 '일본이 강했던 시대'의 상징으로, 가미카제는 '개인을 넘어 더 큰 무엇인가를 추구한 사람'의 상징으로 비쳐요. 이런 상징은 위험해요. '희생은 아름답다'고 내세우면서, 이면에선 적을 악마화하고 약자를 억압하니까."
일본 사회엔 이런 비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4) 감독도 2013년 제로센 개발자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의 청춘을 그린 '바람이 분다'를 내놨다. 영화 '영원의 제로'는 가미카제 대원이 창공을 가르며 끝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그에 이은 패망과 주인공의 회한(悔恨)까지 보여준다. 미야자키 감독은 일본 언론에 "햐쿠타는 신화를 날조한다"고 했다. '바람이 분다'에 공명한 일본인(매출 120억2000만엔·2013년 흥행 1위)이 '영원의 제로'에 열광한 사람(87억6000만엔·2014년 1위)보다 아직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