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에 사는 고등학생 김모(18)양은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에스크(Ask.fm)’ 계정을 만들었다가 한 달도 안 돼 삭제했다. 질문란에 각종 음담패설과 욕설이 매일같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김양은 “한번은 안경을 안 쓰고 백화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에스크에 ‘XX, ○○백화점에 안경 벗은 애 너냐? 눈 썩겠다’라고 올라왔더라”면서 “나를 실제로 아는 사람이 욕을 한 것 같아 너무 무섭고, 재미로 만든 SNS에 상처받는 게 싫어서 계정을 지웠다”고 말했다. 김양은 ‘가슴사이즈가 어떻게 되냐’, ‘제발 꺼져줄래’ 등 음담패설과 욕설이 담긴 질문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으나, 수사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자포자기한 상태다.
‘에스크’는 2010년 만들어진 SNS로, 현재 150여개국에서 1억80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어를 포함해 49종의 언어로 서비스되며, 우리나라에서는 10~20대를 중심으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에스크는 자유롭게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형식의 SNS다. 예컨대 A라는 사람이 에스크 계정을 만들면, 아무나 A의 계정에 가서 질문을 올릴 수 있다. A는 자신의 질문에 답변을 올리고, 이를 트위터·페이스북 등 다른 SNS로 공유하는 식이다.
에스크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다. 질문자는 에스크에 따로 가입하지 않더라도 익명으로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다. 에스크 회원의 경우에는 원한다면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지만, 기본적인 설정은 ‘익명으로 질문하기(Ask anonymously)’다. 에스크가 유행한 것도 바로 이 익명성 덕분이다. 에스크 계정에 1만건이 넘는 답변을 단 직장인 박지혜(여·28)씨는 “나에 대한 익명의 관심이 고맙고, 기발하고 재밌는 질문이 많아 좋다”며 “가끔 음담패설도 올라오지만, 아직까진 불편함보단 재미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에 30~40건씩 질문을 받는다는 중학생 박모(16)군도 “익명이다보니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익명성으로 인해 에스크가 음담패설, 인신공격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스크에서 남을 공격하는 행위가 늘면서 ‘에스크 저격’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공격하는 사람은 익명의 다수이지만, 당하는 사람은 특정한 개인이기 때문에 사이버폭력의 수위도 몹시 높다.
고등학생 박모(16)양은 “입에 담기도 어려운 성희롱과 욕설이 수십 건이 올라왔다”며 “부모님이 볼까 봐 무서워 얼른 계정과 애플리케이션을 지웠다”고 했다. 중학생 이모(15)양은 ‘인생 제대로 살아라 XX아’, ‘시궁창 냄새나서 더는 너랑 못 놀겠다’ 등의 ‘에스크 저격’을 당해 작년 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에스크’ 등 SNS에 범죄 혐의점이 있는 게시물이 올라올 경우 수사가 100%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모든 사건에 대해 해외 경찰에 공조수사를 요청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외에서도 이같은 에스크의 사이버 폭력에 대한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2013년 8월 영국의 소녀 한나 스미스(당시 14세)는 자신이 습진에 걸렸다는 고민 글을 에스크에 털어놓았다가, 조롱 댓글과 비방 질문을 계속해서 받았다. 에스크 계정과 연동된 그녀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자살을 부추기는 댓글도 올라왔다. 결국 스미스는 목을 매 자살했다. 에스크 사이버 폭력을 이유로 자살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이 미국·유럽에서 4명에 달한다.
이에 해외언론들은 에스크의 폭력성에 대해 수차례 지적했고, 세이브더칠드런 등 단체는 에스크에 게재하던 광고를 중지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에스크가 사이버 왕따 만들기(cyberbullying)를 방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에스크의 CEO 더그 리즈는 지난 9일(현지시각) “에스크 서비스 자체의 중단을 고려했을 정도로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부적절한 컨텐츠가 올라오면 15분 이내에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인력을 확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