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는 은행·증권사·보험회사 등에서 일하며 고객의 돈을 위탁받아 운용하여 수익을 남기는 사람이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가 발표한 ‘한국 펀드매니저의 3년 수익률’ 결과, 1위를 차지한 이는 신영자산운용의 박인희(38) 팀장이었다. 그가 2014년 운용한 펀드는 7조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였다.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서 ‘가장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인 박인희 팀장을 만났다.
박인희 팀장은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교사가 되기 바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교직을 이수했다. 영어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러나 교생 실습을 하면서 자신은 교사로 살 수 없는 사람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학교라는 울타리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활동적인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그는 대학 졸업 후 유망 벤처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캐피탈 회사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업했다.
“대학 때 거의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어요. 금융, 경제 상식은 전혀 없었어요. 코스피가 뭔지, 코스닥이 뭔지도 몰랐거든요(웃음). 아르바이트를 하던 회사 분위기가 매우 역동적이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면서 금융회사 입사를 결심했어요.”
그가 사회초년생이었던 1999년은 외환위기 여파로 경제 전반이 위축된 시절이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사람에게 길이 열리는 법이다. 국내 시중은행의 자회사인 한 투신사에서 낸 직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면접 때 ‘비전공자인데 왜 지원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금융관련 전문 자격증인 CFA 1차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어요.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아니고 단지 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면서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싶다고 하니, 면접위원들이 저를 꽤 당돌한 사람으로 봤어요. 그런데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나봐요. 운이 좋았어요.”
박 팀장은 입사하고 4년 뒤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재무분석 및 투자 의사결정 관련 자격증)를 취득했고, 같은 회사에서 6년간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기업의 재무상태 등을 분석하고 자료를 만들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들여다보는 자료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부산・울산・마산 등 지방에 있는 공장 수백 곳을 찾아다니며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살피고,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눈으로 보면 평생 제 것이 돼요. 1년 동안 평균 100여 곳의 기업을 돌아다녔어요. 지금도 후배들에게 현지 방문을 꼭 권합니다.”
박 팀장은 2006년 현재 직장인 신영자산운용으로 옮겼다. 회사 규모는 이전 회사에 비해 작았지만, 이직 후 그에게는 좀 더 많은 권한이 생겼다.
2014년 한 해 동안 7조원 운용
“국내 펀드매니저 가운데 여성 비율은 12% 정도예요. 위로 갈수록 여성 펀드매니저의 비율은 더 낮아지죠. 남성 위주로 굴러가는 조직이다 보니 여성들에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아서 고민이 있었어요. 시니어 펀드매니저들이 대부분 남자이고, 여성보다는 남성 후배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거든요.”
박 팀장은 여성 펀드매니저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는 현 직장에서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입사하자마자 맡았던 200억원대 마라톤펀드(장기투자 가치주펀드)는 1년 만에 6000억원대의 회사 대표펀드로 성장했다. 이후 그는 팀장으로 승진했다. 3명의 주식운용 팀장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박 팀장은 단기 성과가 아닌 2~3년을 내다보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기업의 가치를 따져보고 투자하는 펀드매니저다. 가치투자란 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지만 상승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고른 뒤 2~3년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기법이다. 저평가된 가치주와 고배당주를 찾아 장기 투자함으로써 높은 수익률을 얻고 있다. 그는 “좋은 기업을 잘 찾아서 투자하면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한다고 했다.
“저희가 발굴한 기업 중 한세실업이라는 오이엠(OEM) 업체가 있어요. 나이키・갭 등 유명 의류회사의 옷을 만드는 회사예요. 2006년 시가 총액은 300억원 정도였어요. 관찰해보니 평판도 좋았고 바이어도 늘고 있더군요. 어느 순간 매출이 1조원이 넘어가면서 이익이 났고 지금은 시가총액 1조원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어요.”
현재 박 팀장이 운용을 맡고 있는 ‘신영밸류고배당’ 펀드는 2014년 저금리와 정부의 배당확대 정책의 영향으로 설정액 3조원이 넘는 펀드로 성장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박 팀장이 맡은 부서에서 운용한 자금은 7조원에 달한다. 그중 약 4조원을 박 팀장 혼자 굴리고 있다.
“컴퓨터 화면상으로는 수십억, 수백원억원이 왔다 갔다 하지만, 돈은 숫자에 불과해요. 실체가 없어요. 저희는 실제로 돈을 만지지도 않고, 본 적도 없어요. 돈은 은행과 증권사에 있고 주식은 예탁원에 있거든요. 운용보수 수수료가 저희 회사로 들어오면 개인별 성과에 따라 월급과 1년에 한 번 성과급을 받아요. 저에겐 제 통장에 있는 급여가 진짜 돈이고, 그런 면에선 다른 월급쟁이들과 똑같습니다.”
수익률이란 말을 하면서 박 팀장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펀드매니저는 다른 사람들의 돈을 다루는 직업이므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제가 관리하는 돈이 어떤 사람에게는 노후자금이고 등록금이고 생활비이고 그렇잖아요. 저의 판단과 선택으로 피해를 보는 투자자들이 생기지 않아야 하니까 책임감이 무겁죠. 돈은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요. 저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손해 보지 않고 조금씩 수익이 오르는 쪽을 선택합니다.”
박 팀장은 매일 오전 7시쯤 출근한다. 휴대폰에는 100여 개의 문자가 들어와 있다. 밤사이 변화가 있었던 해외 주식시장 정보들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주식 시황만 검토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유럽, 중동, 일본, 중국의 주식 시장을 다 봐야 한다. 200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금융시장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되었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회적 사건이 주식 시세에 영향을 주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하세요”
펀드매니저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눈이 더욱 중요하다.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 경험으로 얻은 통찰력이 펀드매니저의 성공 여부를 가르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은 신중하되 과감할 때는 과감하고, 변화와 이에 따른 스트레스를 즐길 줄 알아야 해요. 어제 실적이 좋았어도 오늘 실적이 나쁘면 당장 해고될 수 있는 직업이에요. 적성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못 버티죠.”
주식시장도 트렌드가 있다. 유행을 탄다는 뜻이다. 2000년대는 ‘주식을 하면 대박을 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단기 성과를 올리는 데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장기투자를 하는 배당 펀드에는 관심을 가진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주식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나름대로 꾸준한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가치 배당펀드에 돈이 몰리고 있다. 박 팀장은 이런 경제 상황 때문에 자신의 수익률이 높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주식으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길게 보면서 투자해야 돈이 돼요. 시장은 언제든지 요동쳐요. 특별한 이슈가 없는데도 20~30%씩 하락하기도 해요. 투자하고 나서 1년 이상 시세를 들여다보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또 그만한 여유자금이 있을 때 투자하세요.”
박 팀장은 요즘 펀드매니저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보면 학생 때부터 주식투자 경험도 쌓고 금융지식도 많지만, 금융 외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젊을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해요. 여행을 떠나거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모든 활동이 결국 자신을 위한 투자였어요. 금융 지식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 펀드매니저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