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신경과학 국제학회 연회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음정이나 박자가 조금씩 불안해서 어떤 사람들이 연주하는지 궁금했다. 연주가 끝나고 대표는 "우리는 전문 음악 연주자로 활동하다 '입스'(yips)가 생겨서 연주가 불가능해 좌절했고, 치료를 받고 과거와 같은 기량은 아니지만, 다시 연주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 응원의 박수를 쳤다.

입스는 흔히 특정 동작을 하려고 할 때 근육이 과도하게 긴장해 그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 성적이 부진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에게 입스가 온 것 같다는 뉴스가 나왔다. 골프에서 입스는 퍼팅할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퍼팅을 하려고 하면 갑자기 손이나 팔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면서 동작 조절이 안 된다. 하지만 입스는 운동 이외 분야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연주자나 전문 작가에게 흔히 나타난다. 섬세한 동작에서 많이 나타나고 같은 작업을 과도하게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잘 생긴다.

의학적으로 입스는 '국소 근긴장이상증'의 일종이다.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근육에 필요 이상의 과도한 힘이 들어가면서 그 근육들을 이용한 행동이나 작업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증상이다. 특정 자세를 취하기만 해도 경직되는 '자세 특이성 국소 근긴장이상증'이 있고, 특정 작업을 할 때만 나타나는 '작업 특이성'이 있다. 대개는 작업 특이성이다.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펜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글씨가 엉망이 되는 '작가 손 경련(writer's cramp)',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과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연주가 불가능해지는 '피아니스트 손가락 경련', 트럼펫이나 트롬본을 불려고 입을 대면 혀에 힘이 들어가서 정확한 리듬을 구사할 수 없는 '트롬본 주자의 혀 경련' 등이 대표적이다.

아름다운 피아노곡들을 만든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도 작업성 국소 근긴장이상증으로 피아니스트 손 경련증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연주 기술이 좋았던 슈만은 20대 초반 오른손에 경련이 발생했다. 특히 가운뎃손가락에 증상이 심해서 나중에는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후 그는 작곡, 지휘, 평론의 길을 걷게 됐다.

타이거 우즈(왼쪽), 로베르트 슈만.

특정 작업만 피하면 그런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신체적 이상도 없기 때문에 입스를 흔히 심리 불안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이 아니다. 이런 증상들은 근육을 자동으로 조절해 특정 행위를 습관적이고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 연결이 잘못돼 나타난다. 심리적인 불안이 입스 증상을 더 악화시키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뇌의 자율 운동 조절 장애다. 생각은 우리 뇌로부터 나오지만, 그 생각이 우리 뇌 기능을 변화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