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SBS '펀치'에서 조강재(박혁권 분)가 가장 좋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일까.

매력적인 인물이 그렇게 많은 '펀치'에서 가장 지질한 조강재에게 눈이 가다니, 착하지도 않으면서 비범하지도 못한 그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반전을 써내는 '펀치'를 보면서도 자꾸만 조강재가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펀치'에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아마도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섹시한 시한부 환자일 박정환(김래원 분)에, 속에 응큼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하지만 애교까지 곁들이며 웃는 모습엔 따라 웃을 수밖에 없는 이태준(조재현 분)에, 고고하게 커서 '난 달라'를 외치지만 사실 제일 갈데까지 가고 마는 윤지숙(최명길 분)까지 밉지만 또 마냥 미워할 수 없어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그래도 이들은 조강재처럼 사랑스럽진 않다. 그가 이 드라마에서 한 악행은 한둘이 아니나, 박정환에게 밀려 2인자가 된 것도 모자라 이태준에게서 가장 모질게 버림받는다는 점에서, 또 그러면서도 꼭 어설픈 잔머리를 써서 매를 번다는 점에서 귀엽기도 하다.

그는 이태준을 20년이나 모시고 살아온 검사다. 후배 박정환을 소개시켰더만 어느새 오른팔은 박정환으로 바뀌었다. 미치고 팔짝 뛸 판이니까 그가 박정환에게 앙심을 품는 것도 이해해줄 수 있다. 비록 그게, 박정환이 뇌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서도 그 수술을 할 의사를 낼름 구속시키려고 용쓰는 매우 저열한 방법이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이태준을 끝까지 믿지 않고 자기 살길을 도모하는 것도 이해된다. 비리를 덮어줄 김밥집 아줌마에게 5천만원을 더 건네야 했을 때, 이태준은 지금은 시기가 안좋으니 좀만 기다리라고 하지만 조강재는 이를 듣지 않는다. 잘못하면 자기 혼자 독박쓰게 생겼으니까. 뒤통수 맞아본 사람만이 직감하는 불안한 기분. 조강재는 자기 돈으로라도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고, 이는 결국 이태준을 곤경에 빠뜨린다. 그래도 위기를 느끼고도 이태준에겐 한마디 못하고 혼자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 참 안쓰럽지 않은가.

이태준이 조강재를 못미더워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그를 대하는 방식은 참으로 모질다. 결국 뺨을 한대 후려맞은 조강재는 멀리 나가 떨어져서 "내가 총장님을 위해 20년이나 노력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속내를 내비친다. 그때 이태준의 답이 걸작. 이태준은 "난 나를 위해 살았는데, 넌 왜 날 위해 살았냐"고 되묻는다. 이 말에는 '너도 너 좋으려고 날 위해 산 거 아니냐'는 저의가 깔려있다. 이거, 너무 잔인한 말 아닌가. 조강재는 어딘가에서 아기처럼 엉엉 울어버렸을 것이다.

그가 이태준이 몰래 보낸 경찰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박정환에게 넘어간 후 첫 마디 "정환아, 나 정말 억울하다"는 그래서 너무 울림이 컸다. 급박한 상황과 진심을 다한 말투와 마냥 억울한 박혁권의 얼굴은 정말이지 이 드라마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금세 박정환의 편이 돼주면 또 사랑스럽지 못하다. 그는 또 박정환을 배신하고 혼자 살 길을 도모한다. 역시 한평생 뒤통수를 맞아온 달인다운 결정 아닌가.

결정적 USB를 빼돌린 그는 박정환이 어차피 오래 못살 것을 감지하고 윤지숙과 거래를 시도한다. 물론 박정환은 한 수위였다. 경찰을 부른 것. 거래가 끝나기도 전에 조강재는 체포됐고, 어쩔 수 없이 USB를 박정환에게 넘겨야했다. 그 절박한 표정. 박정환이 아파서 쓰러질 뻔할 때의 영혼 없는 걱정과 완전히 다른 표정. 그러면 안되는데 자꾸 웃음이 난다.

조강재는 이제 뒤통수를 포기하고 조용히 감옥에 들어가있다. 윤지숙이나 이태준이 자기 일 수습하느라 조강재를 일찍 꺼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된다. 그저 자기 밖에 모르는 이태준을 사랑했던 죄. 그의 애달픈 진심은 나라도 알아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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