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정선 기자]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장면이 또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임성한 작가이기에 시도했고, 또 그이기에 가능했다. 임 작가이기에 이런 장면 이후로도 차기작이 편성됐다. 이 뿐 아니라 임성한의 전성기는 지금도 현재진형형이다. 다소 조용하게 흘러가던 MBC '압구정 백야'는 최근 조나단(김민수 분)의 죽음과 서은하(이보희 분)의 방귀 사건 이후 단숨에 상승세를 타며 자체최고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그보다 훨씬 젊은 작가들이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로 아시아를 호령하는 현재의 드라마판에서도, 임성한은 여전히 '쏘 핫'이다.

▲'위기탈출 넘버원' 아닙니다 
KBS 2TV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는 그냥 숨만 쉬어도 죽음을 맞이는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 프로그램 이후 네티즌은 터무니 없는 죽음을 두고 '위기탈출 넘버원'을 떠올리곤 하는데, 임성한 작가는 드라마에 '위기탈출 넘버원'식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선두주자다.

지난 2006년 방송된 SBS '하늘이시여'에서는 '웃찾사'를 시청하다 죽는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소피아(이숙 분). '웃찾사'를 보며 신나게 웃던 소피아는 심장마비로 '하늘이시여'에서 하차했다. 이 장면, 아니 사건에 가까웠던 이 대목은 1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표적인 임성한표 엽기 장면이다.

이후 임성한은 등장인물을 뜬금없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죽이곤 했는데, '하늘이시여' 소피아의 죽음이 바로 그 시초가 아닐까한다.

▲이것이 바로 전설적인 '레이저-빔!'

지난 2011년 방송된 SBS '신기생뎐'은 귀신들의 천국이었다. 딸기는 칫솔로 씻어야한다고 시청자를 훈계하던 임 작가는 이제 무속에 '팍' 꽂혀버렸는데, '신기생뎐'은 그런 임성한의 취향을 잘 드러내준 작품이다.

이 장면의 주인공은 그 이름도 화려한 아수라(임혁 분)다. 아수라의 몸 속에는 그냥 귀신도 아닌 임경업 장군의 혼이 깃들었다는 화려한 설정이기도 하다. 귀신에게 홀린 아수라는 평소 가족들에게 무당이 할 법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곤 했는데, 눈에서 초록빛 레이저빔이 뿜어져나오는 이 장면에서 아수라의 위력이 극에 달했다.

특히 아수라는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그리곤 "천상천하 유아독존! 으하하하!"를 외치며 작두를 타는 무당처럼 방방 뛰었다. 이를 본 아수라의 가족들이 기절하는 것은 물론, 안방극장 시청자들까지 기절한 판이었다.

▲잠자는 숲 속의 오창석, 반야심경 속에서 눈 뜨다

'신기생뎐'의 충격이 가실 때 쯤, 2013년 임 작가는 '오로라 공주'로 돌아왔다. 얼핏 보기에 발랄해보이는 드라마 제목에 무속의 냄새는 없었다. 그냥 딸 부잣집 아들과 아들 부잣집 딸이 결혼하는 알콩달콩 드라마인줄로만 알았다. 물론, 누구의 작품도 아닌 임 작가이기에 알콩달콩에 막장이 많이 가미된 그렇고 그런 일일극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첫 회부터 임성한은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쳤다. 그의 골수팬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첫 방송이었다. 남자주인공 황마마(오창석 분)의 첫등장이 바로 반야심경과 함께였기 때문.

황마마는 고풍스런 캐노피가 쳐져 있는 침대에서 공주처럼 잠들어 있었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그의 누나들이 반야심경을 읊고 있었다. 그리곤 황마마는 첫 방송에서 얼굴을 다 공개하지도 않은 채 이처럼 황당하고 강렬한 첫 등장만을 남겼다. 소름끼치고 황당한 밤 기도였다.

▲말이 필요없다 "암세포도 생명이잖아요"

'오로라 공주'는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남겼다. 멀쩡했던 남자주인공 황마마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대신 암세포를 가진 설설희(서하준 분)는 살아남았다. 게다가 '생명'인 암세포를 죽이지도 않은 설설희가 말이다.

설설희는 박지영(정주연 분)에게 "암세포도 생명이잖아요"라면서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이유가 있어서 생겼을 텐데 같이 지내보려고 해요"라면서 시청자들의 할 말을 잃게 했다.

"암세포도 생명이잖아요"의 여파는 상당했다. 패러디가 속속 등장했고, 임 작가와 '오로라 공주'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물론 이 논란도 어느샌가 희화화돼 사그라들었다. 임 작가의 전작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아들이 죽어도 방귀는 계속된다

최근 안방극장은 현재 방송 중인 MBC '압구정 백야'가 준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단순히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났다면 이 정도의 파급력은 아니었을 거다. 사건은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소재로 발생했다. 바로 죽음과 이어진 방귀였다.

서은하(이보희 분)는 아들 조나단(김민수 분)이 조폭들에게 맞아 죽자 눈물을 흘렸다. 중요한 건 서은하가 맹장 수술 직후라는 사실이었다. 서은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조나단과 결혼한 친딸 백야(박하나 분)가 며느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내심 기뻐했다. 서은하는 "하늘의 뜻이다. 야야 우리 집으로 못들어오게"라고 독백했다. 그리고 들려온 방귀 소리.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등장한 서은하의 방귀는 기상천외했다.

아무리 친엄마가 아니었지만, 아들의 비명횡사 직후 엄마가 방귀를 뀌는 장면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갔다. 맹장 수술을 한 환자가 방귀를 뀌는 리얼리티, 그러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과 이어진 방귀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압구정 백야'를 현재 가장 '핫'한 드라마로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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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