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 빨리 가길 바란다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정작 2015년이 되자 빨리 겨울이 가길 바란다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의 1월은 지독히도 추워서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날이 많았다. 2월이면 들이닥칠 황사와 미세 먼지는 이제 겨울의 옵션이 아니라 필수 상황이 된 지 오래다.
봄이 오면 어떨까. 이곳이 아닌 저곳에 가고 싶고, 여기가 아닌 저기에 있고 싶은 건 계절과 상관없다. 마음이 너무 추운 탓이다. 2014년엔 회사에서 해고된 지인이 많았다. 사고로 다친 사람도 있었고, 유산(流産)하거나, 십 년이 넘은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이혼하거나, 이혼당하거나, 이곳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가장 많은 건 연인과 헤어진 친구이다. 누군가에겐 사소하지만 자신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가장 보통인 연애. 작가 K는 최근 내게 한 남자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녀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는 여러모로 여자의 감정을 착취하는 이중적이고 나쁜 남자였다.
그녀는 그와 헤어지고 싶어 몇 번을 시도했지만 그에게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헤어질 결심을 하면 낌새를 챈 남자가 그녀에게 이상할 만큼 다정해져서 다잡은 감정을 온통 헤집었다. 하지만 다시 잘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 버리는 그 남자 때문에 그녀는 여러 번 정신이 무너지는 대참사를 겪었다. 하지만 미련인지 집착인지 모를 광기 어린 사랑은 '사귈 때'가 아니라 '헤어지고 난 이후' 그녀를 더 괴롭혔다.
'그 남자에게 전화하지 마라'는 내가 연인과 헤어진 친구에게 가장 많이 권해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론다 핀들링의 직업이 심리치료사라는 점은 이 책이 다른 책과 어느 지점에서 다를지를 예고한다. 그녀는 어느 날 사랑하던 남자에게서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받았다. 심리치료사라는 직업에도, 그 많은 지식과 임상 사례를 접했으면서도 그녀는 깊이 상처받고 절망한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정신 상담을 다른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가서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잘 아는 일이 실제로 자신에게 닥치면 보통 사람보다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버림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 가운데 하나다. 어린아이일 때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누구나 이런 두려움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여자들이 끝난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머물러 있는 이유는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시는 이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차라리 그 남자에게 매달리고 의지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단 한 번의 데이트도 해서는 안 될 또 다른 유형의 이중적인 남자가 있다. 이때 당신이 그 남자에게 이끌려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이 남자는 당신을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 남자가 은근히 유혹하거나 이중적인 메시지를 보낸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흔히 이런 유형의 이중적인 남자는 여자와 가까워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유혹적인 언행을 함으로써 사귀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드러내다가도 상대가 적극적인 반응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흠칫 뒤로 물러난다. 때로는 자기가 유혹적인 언행을 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다가 상대방이 그 사실을 지적해주면 그제야 알아차리고 뒤로 한발 물러난다."
이 책은 실질적으로 이중적인 남자를 알아보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헤어진 연인에게 다시 전화하지 않는 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이중적인 남자는 당신이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당신을 만날 시간을 좀처럼 내지 않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당신만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하는 남자다. 그들은 정말 가까운 사이처럼 굴다가 다음에 만나면 냉담하게 행동하고, 전화하겠다고 말하고는 전화하지 않는다는 공통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남자와 이별하는 과정은 더 쓰라리다. 저자는 이런 남자와 이별해 힘들다고 해도 '절대로 전화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전화하고 싶을 때를 대비해 믿을 만한 친구들의 전화번호 목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남자와 나눈 추억을 낭만으로 포장하는 일, 특히 낭만적 노래와 영화가 실연당한 여자 심리를 잘 표현하지만 어떤 여자들은 이런 노래 때문에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현실보다 절망적인 희망이 더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사귀다가 헤어질 때는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현재 그대로 끝내라. 인생은 화가가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소위 나쁜 남자, 그들은 매력적이고 세련되며 지적일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대개 미숙하다. 그들은 자아가 강해서 오직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찾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녀는 이중적인 남자를 대하는 법으로, 그 남자의 논리에 빠져들지 말고 주체적으로 해결하라고 말한다. 당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남자 곁에 어째서 머물고 있는지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최후통첩' 같은 것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한다. 어떤 남자든 여자 곁에 머무는 이유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최선이라고 믿는 그 모든 방법을 쓰는 것보다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절로 풀리기도 하는 게 자연의 이치일지 모른다. 우리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훗날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 않은가.
헤어지는 법에 전문가란 게 있을까. 가령 '실연 전문가' 같은 게 직업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인생의 진실이 비슷하게 작동한다. 잘 죽겠다고 결심하는 건 결국 가장 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진 삶의 태도다. 잘 헤어지는 것 역시 잘 만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