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공황장애·자폐증·사이코패스·간질 같은 뇌 기능 이상으로 생기는 질병을 연구할 든든한 창고가 생긴 거죠. 이제까지는 외국의 뇌은행과 협력해 뇌조직 샘플을 구해오곤 했는데 이제 한국인 특성에 맞는 뇌조직을 연구할 길이 열린 겁니다."
박성혜(55) 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가 지난 12일 한국뇌은행장으로 임명됐다. 정부 출연 기관인 한국뇌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대구에 문을 열면서 만든 산하기관이다. 국내 유일 뇌조직 은행으로, 뇌조직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샘플 운영을 전담한다. 초대 한국뇌은행장은 지제근 전 서울대 의대 병리학교실 교수였는데 작년 말 갑자기 별세해 뇌은행 자문위원이던 박 교수가 자리를 넘겨받았다. 사실상 초대 행장인 셈이다. 그는 서울대병원과 대구의 뇌은행을 오가며 일한다.
박 교수는 30년 가까이 신경계와 조직학을 연구해왔다. 장기(臟器)와 달리 뇌는 생검(生檢·생체에서 조직 일부를 채취하는 것)이 까다로워 연구자로서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서울대병원으로도 뇌 부검 의뢰는 1년에 5건이 채 안 들어와요. 특히 치매 환자의 사후(死後) 뇌조직을 연구하려면 부검 후 연구 목적 기증을 승낙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집이나 요양원에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고 부검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박 교수는 그래서 뇌 부검 필요성부터 홍보하고, 샘플을 많이 확보해 의사들의 연구를 돕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치매 진단에서 사망까지 10년 정도 걸리는데, 초기에 환자와 가족의 부검 의뢰를 받는 게 중요해요. 이제까지 그 전담 기관이 없었던 거죠. 당장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해도 장기적으로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현재 뇌은행은 뇌조직 100개를 보관할 시설(초저온 냉장고, 질소 탱크 등)을 갖추고 있다. "유럽·미국에 이어 일본도 '뇌 지도 작성 프로젝트'에 뛰어들었어요. 후발 주자지만 우리도 이번 뇌은행 설립을 바탕으로 '뇌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애써야죠. 일반인이 견학할 '뇌 박물관'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