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많았다. 한국말은 다소 어눌했지만,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 스크린에서 벗어난 배우 최 스텔라 김은 극중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해맑은 미소를 연신 지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JK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배우 최 스텔라 김은 활달한 성격의 재미 교포였다.
그는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국제시장'에서 성인 막순 역을 맡았다. 주인공 덕수(황정민)의 막내 동생으로, 흥남철수 때 헤어져 미국으로 입양된 후 TV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덕수와 재회한다. 그가 "여긴 운동장이 아니다…놀러온거 아니다…"라고 울먹이는 장면은 후반부 하이라이트다. 덕수와 막순의 오열에 관객들도 함께 눈물 흘렸다.
짧은 분량이지만 강렬한 장면을 맡은 이는 최 스텔라 김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UCLA)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해 연기와 춤을 병행했다. 지난해 친구들과 '당신 어떤 아시안이야(What kind of Asian are you)?'라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고, 이를 접한 JK필름 측은 그에게 오디션을 제안했다. 200대 1을 경쟁률을 끝에 막순 역을 쟁취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한 오디션이었다. 그는 합격한 후에야 윤제균 감독과 황정민이 얼마나 유명한 감독과 배우인지 알았다고 했다. "김윤진은 미국 드라마 '로스트' 등에 출연해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잘 몰랐다"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국제시장'이 엄청난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고 오디션을 봤다면 상당한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 중인 그는 JK필름의 초대로 지난 19일부터 26일까지 한국에 머물렀다. 오는 5월에 결혼하는 약혼자와 함께 인사동과 북촌 등 서울을 관광했다. 그에겐 4번째 방문이었다. 지난해 '국제시장' 촬영 당시 제작진은 "1,000만 영화가 되면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약속을 했다. 최 스텔라 김은 "점점 관객수가 늘어나더니 진짜 1,000만 관객을 넘었다"며 "놀라운 경험"이라고 했다. 이하 최 스텔라 김과의 일문일답이다.
='국제시장'이 지난 1월 9일 미국에서도 정식 개봉했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엄마와 언니가 굉장히 감동했다. 미국에서 댄서와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그 모습들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다. '국제시장'을 보고 매우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어떻게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는지, 그 전에는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아 극장을 가지 못하셨다. 아마 DVD로 보실 것 같다."
='국제시장'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나.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모님은 나를 미국 사람으로 키우고자 한국 문화를 많이 알려주지 못하셨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한국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미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자부심과 관심이 훨씬 커졌다."
=교포사회에서 '국제시장'은 어떤 의미인가.
"중요한 영화다. 주변 한국계 친구들은 거의 다 봤다. 미국에 사는 2,3세대는 한국 역사나 부모 세대를 잘 모른다. '국제시장'은 그런 것들에 대해 가까이 다가가게 해줬다. 부모님이 살아온 삶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나아가 한국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오디션을 볼 때 이렇게 잘 될거라 예상했나.
"전혀. (웃음) 오디션을 봤을 때 재미있는 경험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흥행 소식을 들으며 매번 놀랐다."
=이산가족 찾기 장면은 감정적으로 매우 강렬한 신이다. 윤제균 감독은 어떤 조언을 했나.
"워낙 중요한 신이지 않나. 감독님이 오디션 때부터 감정톤을 정해주셨다. 오디션 때 보여드린 감정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다시 만났을 때는 편하게 대해줬다. 절대 긴장하거나 겁먹지 말고 오디션 때 하던 대로만 하라고 하더라. 인물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자세히 말씀해주셨다. 현장에서 '왜 나를 떠났어' '어머니는 어디있어' 등의 대사가 추가됐다."
=해당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는 황정민과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고.
"황정민의 결정이었다. 그도 나를 모르고, 나 역시 그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촬영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굉장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그 순간 감정들은 굉장히 진실됐다. 우리는 그날 진짜 처음 만났으니까! 나처럼 한국 사람이지만,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한 일은 굉장히 잘 한 일인 것 같다."
=처음에 춤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춤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6세 때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의 아이디어였다. 발레부터 재즈까지 다양했다. 언니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나 역시 무언가를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한 후 댄서로 일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연기로 넘어갔다. 이젠 춤 보단 연기 쪽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인 배우로 활동한다는 건 어떤 것인가.
"미국에서 한국배우들이 점점 늘어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란 사회에서 백인을 제외한 이들이 전문직을 하는게 쉽지 않다. 선입견이나 차별대우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15년 전에 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주어지는 배역은 게이샤이거나 마사지사였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바뀌고, 생각이 달라지긴 했다. 그런 것들도 열심히 하다보면 희망이 되고 통로가 되겠구나 했다. 나름대로 내가 한국 배우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국제시장'은 희망이 현실로 된 기회였다. 물론 아직도 불편한 상황들은 존재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웃음)"
=여전히 정형화된 역할들이 많은 것인가.
"그렇다. 동양인이니까 영어를 일부러 어눌하게 하라고 한다. 난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왜 그래야 하는 걸까란 생각이 들곤 한다."
=최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계 미국 개그우먼 마거릿조가 북한 장교 퍼포먼스를 펼쳐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굉장히 재미있었다. 인종차별적이라기 보다 재미있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 한 번에 그쳤다면 좋았겠지만, 상황이 반복되고 분량이 길어지면서 불편한 감정이 들긴 했다. 이를 떠나서 마가릿 조를 굉장히 좋아하고,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영화를 경험했는데, 차이가 있나.
"한국 영화는 해본 적이 없어 굉장히 긴장했다. 하지만 촬영이 들어가자 결국 똑같더라. 그동안 내가 한국영화 밖에서 있었다면, '국제시장'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 실제로 경험을 했다.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이 좀더 친밀하게 다가왔다. 이번에 한국에 머물면서 취재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였다."
='국제시장'이 흥행에 성공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웃음). 그렇다 하더라도 할리우드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나.
"실제 입양아는 아닌지, 부모님 두 분 모두 한국인인지 많이 불어본다. '내가 한국인처럼 안 보이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베트남전이 일어났을 때 어머니가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일하셨다. 영화에서처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 오셨다."
=한국에서도 활동할 계획이 있나.
"기회가 온다면 물론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굉장히 놀라울 것 같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국제시장'을 향한 반응이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흔한 말일 수 있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마음이 말하는 대로 사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8세에 댄서가 되고 싶다는 걸 알았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을 가서 졸업했고, 앞으로도 지금도 선택의 기준은 행복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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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