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말 회춘(回春)이라도 한 걸까. 22일 호주 아시안컵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손흥민(23·레버쿠젠)의 추가 골을 이끌어냈던 차두리(35· FC서울)의 '폭풍 드리블'이 화제다. 차두리가 공을 잡고 60여m를 질주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6초. 이는 평균 시속 36㎞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구 선수로 꼽히는 아리언 로번(바이에른 뮌헨)의 기록(시속 37㎞)과 비슷하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만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국을 4강으로 이끈 차두리지만 앞으로 대표팀에서 그를 볼 기회는 이제 많아야 두 경기다. 그는 이미 이번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겠다고 선언했다. 온라인에서는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를 반대하는 서명운동까지 펼쳐지고 있다.
◇차미네이터
차두리는 한국 축구 영광의 순간에 빠지지 않는 선수였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첫 16강' 당시 그의 활약이 빛났다. 181㎝·79㎏으로 체격이 탄탄한 차두리가 빠르게 질주하면 상대 수비수는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팬들은 그를 '차미네이터(차두리+터미네이터)'라 불렀다.
차두리는 2014 브라질월드컵 출전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했다. 하지만 결국 대표팀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브라질월드컵 이후 다시 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후배들이 잘해주고 있어 이곳에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대표팀 경력을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그를 붙잡은 건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이었다. "명예로운 은퇴를 돕겠다"며 차두리를 발탁한 슈틸리케 감독은 오른쪽 수비수 차두리에게 활발한 공격 가담을 주문했고, 이는 대성공을 거뒀다. '차미네이터'의 질주가 한국의 승리를 부른 것이다.
◇형님 리더십
축구 대표팀은 23일 오전 4강전(26일 오후 6시)이 열리는 호주 시드니로 이동했다. 오후에 현지 적응 훈련을 할 계획이었지만 대표팀을 태우고 멜버른을 떠난 비행기가 경미한 기체 결함으로 회항하는 바람에 시드니 도착이 늦어져 훈련 일정은 취소됐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차두리는 평소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후배들에게 장난을 거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차두리는 아시안컵 본선 국내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운 대표팀 최고참이지만 후배들 앞에서 권위를 내세우거나 무게를 잡는 법이 없다. 한때 간장약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등 '활력의 상징'이었던 그답게 훈련장에선 활짝 웃는 모습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한다. A매치 경험이 적은 후배들에겐 먼저 다가가 "소속팀에서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며 긴장을 풀어준다.
차두리와 띠동갑인 손흥민은 "두리 형은 믿고 기댈 수 있는 친형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차범근
차두리에게 한국 축구의 전설적 존재인 아버지 차범근(62) 전 대표팀 감독은 언제나 큰 산이었다. 그는 지난해 K리그 시상식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축구로 인정받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두리에게 최고의 팬은 역시 '아버지'다. 차두리는 경기 후 항상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데, 22일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뒤에는 차범근 감독이 "야, 내가 (현역 시절) 하던 걸 네가 하느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차두리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자신의 트위터에 대표팀 선수들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나의 마지막 축구 여행!!'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가 아시아를 호령했던 아버지도 들어 보지 못한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면서 아름답게 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