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禹柄宇·48) 청와대 민정수석 내정자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 입성한 지 8개월 만에 대통령 친인척과 공직자 사정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실을 책임지게 됐다. 만 20세에 사법시험에 ‘소년(少年) 등과’한 데 이어 40대 후반에 민정수석까지 올랐다.
우 내정자의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들은 일선 검찰청의 검사장이나 대검·법무부에 포진돼 있다. 그는 검사장 승진을 하지 못했고, 동기들에 비해 나이도 어린 편이다. 민정수석을 그동안 검사장이나 고검장급 인사가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발탁은 이례적이다.
그는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실장이 민정수석을 건너 뛰고 직접 그에게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며 "그가 어린 나이에 민정수석에 오른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경북 봉화 출신인 그는 서울대 법대 4학년 때인 1987년 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0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구지검 특수부장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대검 중수1과장, 대검 수사기획관 등을 거치면서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 검사로 꼽혔다.
그는 2009년 대검 중수 1과장 시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다룬 '박연차 게이트'의 주임검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소환 조사를 받은 이후 갑작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 여파로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퇴했다.
그는 특별수사와 기획력이 뛰어난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들 사이에서도 선두급을 달렸지만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고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끝으로 검사직을 그만뒀다. 노무현 대통령 수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까다롭고 깐깐한 성격이지만 그를 거쳐 간 피의자들이나 선후배들 사이에서 "뚝심 있게 수사한다" "독한 검사"라는 평을 들어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DJ 아들 수사로 이어진 '이용호 게이트' 사건 특별검사팀에 파견됐다. 당시 차정일 특별검사가 "믿을만한 검사"라고 칭찬했다.
그는 '부자 검사'로도 유명했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뒤 423억3230만원을 신고해 행정부 고위공직자 재산 순위 1위에 올랐다. 장인한테 물려받은 재산 덕분이다. 재산 신고 내용을 보면, 부인 명의 예금과 채권이 각각 133억여원과 164억여원이다. 경기도 한 골프장 회장을 지낸 그의 장인은 2008년 세상을 떠났는데, 딸만 넷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