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3월 서울 강동구의 한 상가 오피스텔 관리인이었던 임모(69)씨는 입주자들이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낸 '쓰레기 예치금' 1000여만원을 빼돌렸다.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쉬웠다.

그러자 임씨는 다른 관리비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자가용 승용차를 가진 입주자들에게 매달 5만원씩 받은 정기 주차료도 1270만원 빼돌렸고, 자신의 세탁비나 병원비 등에 썼다.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120만원씩 필요에 따라 빼내는 액수도 달랐다. 그의 손은 갈수록 커졌다. 오피스텔 관리단 업무추진비 2680만원, 월 정기 주차비 2520만원, 창고 임대료 1662만원, 장기수선충당금 562만원, 방문객 주차 이용료 960만원, 주차장 바닥 타르 제거 공사비 500만원 등 총 1억1370여만원을 마음껏 빼냈다. 이 돈으로 그는 일본 여행, 아내·딸 생일 축하, 처남 방 마련, 자동차 수리, 사돈과의 식사 등에 썼다. 수사기관에 꼬리를 잡힌 그는 2013년 법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관리인 임씨, 무슨 돈으로 어디에 썼나.

오피스텔 관리비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새고 있다. 임씨처럼 관리비를 쌈짓돈처럼 꺼내 쓰는 사람도 있지만,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어 입주민의 부담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 각종 보수공사 업체를 선정할 때 값싸고 경쟁력 있는 업체와 계약을 맺을 수 있지만,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뒷돈을 받아 챙기는 것이다. 또 오피스텔 일부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마음껏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는 사이 영세한 세입자들이 내는 관리비는 계속 새 나간다. 새 나가는 만큼 세입자 부담은 커진다.

우리나라 오피스텔·상가 등 집합건물의 관리는 소유주 모임에서 선출되는 관리인이 맡는다. 이들은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건물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아 처리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임씨처럼 얼마든지 관리비를 자기 돈처럼 빼 쓸 수 있다.

경기도 안산의 한 상가 관리인 김모(49)씨는 상인들이 관리비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는 2010년 5월 자기 명의 은행 계좌에 보관 중이던 관리비 220만원을 건물 쓰레기 패널 공사 대금 명목으로 업자에게 송금한 뒤 이 중 110만원을 아내 명의 계좌로 돌려받는 등 15회에 걸쳐 59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작년에 기소됐다. 서울 강남구 한 오피스텔 관리소장으로 일했던 노모(73)씨는 전기요금·상하수도요금·화재보험료 등을 주민들에게 실제 납부액보다 많이 부과하고, 실제 직원으로 근무하지 않은 사람에게 급여를 지급해 빼돌리는 방법으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9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작년에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건물 내 유휴(遊休) 공간을 공짜로 쓰고, 관리비는 다른 입주자들에게 청구하기도 한다. 서울 광진구 A주상복합의 관리인 B씨는 2010년 8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지하 4층 창고를 골프연습장으로 무단 개조해 운영하면서 단 한 번도 전기료를 내지 않았다. 거주자들의 공용관리비에 은근슬쩍 골프연습장 전기료를 포함시킨 것이다. 구로구의 C주상복합의 구분소유자 D씨는 관리단 의결을 거치지 않고 지하 5층 주차장 일부를 개인 창고로 사용하기도 했다.

건물 보수공사나 청소 위탁 업체 등을 선정할 때 특정 업체와의 수의계약을 맺는 이른바 '짬짜미'도 흔하다. 150가구 이상 아파트는 200만원 이상의 공사일 경우 공개경쟁입찰을 해야 하지만, 오피스텔 등 집합건물에는 적용되지 않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서초구 E주상복합 관리인은 2012년부터 2년간 18건의 공사·용역을 경쟁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사업자를 선정했다. 이 중 공사 12건에 대해서는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업체 견적을 그대로 발주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문제는 이처럼 새는 관리비가 어느 정도인지 현행 집합건물법으로는 파악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검찰 관계자는 "오피스텔·상가 등 집합건물 관리비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집합건물법을 개정해 비리의 싹을 잘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