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의학전문기자·논설위원

30대 후반 엄마가 여덟 살 된 남자아이를 데리고 은행에 자주 일을 보러 왔다. 은행 직원은 그때마다 아이에게 "잘 있었니?" 하며 인사를 건넸지만 아이는 말이 없었다. 학교 갈 나이로 보이는데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또래보다 말하는 것이 어눌해 일상적 대화도 하기 어려워 보였다. 가끔 아이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

은행 직원은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며 아동 보호 기관에 신고했다. 가정 현장 조사를 해보니 아이 허벅지와 엉덩이에 맞아서 생긴 상흔(傷痕)이 있었다. 볼과 입술, 눈가에 멍이 있고 부은 상태였다. 명백한 아동 학대였다. 아이는 정신지체 2급으로 이해력과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고, 사소한 잘못을 반복하는 상황이었다. 아이 엄마는 장애 아동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신체적 체벌(體罰)을 지속했던 것이다.

요즈음 어린이집 보육 교사의 폭력이 잇따라 드러나서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아동 학대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가정에서 벌어지는 가혹한 체벌이나 학대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낸 '2013년 아동 학대 보고서'를 보면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혀를 차게 된다. 그해 아동 학대 의심 사례 신고가 1만857건이다. 아이가 자주 얼굴에 멍이 든 채 학교에 온다든지, 옆집에서 매일 아이 때리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난다든지, 아이 옷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다닌다며 신고된 사례들이다. 그중 두 번 현장 조사를 통해 아동 학대로 판정된 사례가 6796건이었다.

그 아동 학대의 82%가 집에서 벌어졌다. 어린이집이나 아동 복지 시설에서 발생한 학대는 9%였다. 가해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부모였고, 많은 피해자는 초등학생과 중학교 1~2학년이었다. 반복적 학대로 여러 차례 신고가 접수된 사례도 1000건에 가까웠다. 사망 사례도 22건 있었는데 이도 대부분 집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가정 내에서 아이에게 하는 체벌은 훈육이라고 여기고 관대하게 봤다. "내 새끼니 내가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치겠다"고 하면 그것이 가혹하다 싶어도 남의 집 일에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사소한 체벌은 점점 강도가 세지기 마련이고, 횟수도 늘어나며 습관이 되기 십상이다. 아동 학대 가해자 셋 중 하나는 자신이 어릴 때 맞고 자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체벌의 악순환이다.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뺨을 때리는 장면이 나오고, 멱살잡이쯤은 폭력으로도 안 치는 폭력 용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도 근본 배경에는 체벌에 관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 40국가가 아동에 대한 체벌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케냐·불가리아·우루과이 등도 포함돼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모든 아동 학대나 체벌을 법과 제도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폭력적 훈육 문화와 인식이 중요하다. "아동은 어떠한 경우에도 신체적 체벌과 모욕적 체벌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갖는다." 이는 우리나라도 1991년에 비준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의 정신과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