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탱크잡이의 명수'로 불리며 사병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이명수(88) 선생이 지난 5일 별세했다.

육군은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장의위원장을 맡아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8일 오전 8시 30분 육군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한 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위 이하 계급의 군인에 대해 육군장을 거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고인은 1946년 10월 병사로 자원입대해 1950년 6·25전쟁 수개월 전에 전역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재소집된 그는 일등상사로 임용돼 육군 3사단 22연대 3대대 소대장 대리로 복무했다. 1950년 7월 영덕지구 전투에서 특공대장에 임명돼 대원 12명과 함께 목숨을 걸고 적진에 침투, 육탄으로 북한군 전차 3대를 격파하는 전공(戰功)을 세워 '탱크잡이의 명수'로 불렸다. 이어 다시 적진에 침투해 적에게 생포된 부하 3명을 구출해냈다. 그의 특공대원들은 결사전에 나서 북한군의 포항 진출을 2주일 이상 지연시키면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공훈을 인정받아 1951년 7월 사병으로는 처음으로 군인에게 최고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6·25전쟁 중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군인은 60명 정도다. 육군 3사단은 그를 부대혼 정신의 상징적 인물로 추앙하고 있다. 이명수 상사는 전후인 1954년 장교에 지원해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1963년 중위로 전역했다. 2013년 일대기를 담은 자서전 '인민군 전차를 딛고 선 영원한 일등상사'라는 책도 출간됐다. 유족은 부인 최순일(80)씨와 아들 이태영(55)·이원영(50)씨 등이 있다. 빈소 분당 서울대병원. (031)787-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