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창(55·경기대 체육학과 교수)은 한국 남자 배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최연소(당시 고2) 국가대표 발탁, 최장 기간(15년) 대표팀 활동 기록을 보유한 장윤창은 1978년 세계선수권 4강, 같은 해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한국 배구를 아시아 정상권으로 끌어올리는 데 앞장섰다. 지난 시즌 V리그 전체 1순위로 입단한 전광인(24·한국전력)은 '괴물 루키'라 불리며 장윤창을 이을 토종 거포로 꼽히고 있다. 장윤창과 전광인이 최근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한국전력 체육관에서 만나 '거포들의 대화'를 나눴다.
◇한국형(型) 거포의 조건
▲장윤창(이하 장)=프로 2년 차 되니까 훨씬 멋있어졌는데? 대학생 때부터 워낙 유명해서 실력은 알고 있었는데 프로 와서도 역시 멋지게 활약하더구나.
▲전광인(이하 전)=저희 감독님(신영철)보다 선배이신 장 교수님께 인정을 받으니 더 기쁩니다. 하동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구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선배님의 전설적인 활약상을 들으며 자랐어요.
▲장=광인이는 내가 현역에 있을 때보다 훨씬 훌륭한 공격수인 것 같아. 힘 좋은 외국인 선수들 속에서도 파워가 밀리지 않잖아? 처음에 네 탄력을 보고 깜짝 놀랐어. 백어택(후위 공격) 때 공중에 정지한 것처럼 체공 시간이 길더라. 외국인 선수와 비교하면 키가 크지 않은데도 점프력이 좋아서 타점이 높은 것 같아. 유연성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던데?
▲전=네, 정확히 보셨습니다. 서전트 점프(제자리 뛰기)가 90㎝ 가까이 되니깐 아직은 점프와 힘으로 하는 스타일이죠. 어깨 근육이 부드러우면 스파이크하기가 수월하다고 하더라고요.
▲장=부상 위험도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유연성은 무조건 키워야 해. 너도 선수 생활 오래 해야잖아. 난 선수 때 개인 요가 레슨까지 받았어. 네 스파이크 폼이 다이내믹해서 힘이 넘쳐 보이긴 하는데 몸을 많이 굽히는 게 조금 거슬렸어.
▲전=어깨로만 공을 때리면 부담이 클 것 같아서 전신을 활용하려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장=그 말도 맞아. 하지만 공격수는 스파이크 때 몸의 흔들림이 적을수록 유리해. 자연스럽게 때리면서 강한 힘을 낼 줄 알아야 해. 삼성화재 레오(206㎝)나 LIG손해보험 에드가(212㎝)처럼 외국인 공격수들은 체격이 크니깐 상대적으로 동작을 크게 하지 않아도 강하게 때릴 수 있어서 유리하지.
▲전=그래서 이번 시즌 전에는 일단 스윙 폼을 간결하게 바꿨어요. 그동안 스파이크 때 팔을 뒤로 크게 빼다 보니 스윙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생겼거든요. 올 시즌엔 스윙이 빨라져서 상대 블로킹을 따돌리는 것도 잘되더라고요.
▲장=덩치 큰 외국인 선수를 이기려면 동양인은 특별히 여러 방면으로 연구해야 해. 내가 스파이크 서브를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건 알고 있니? 그거 성공하려고 밤마다 10㎏짜리 모래 조끼 입고 훈련하기도 했어. 그때 (스파이크 서브) 특허를 냈어야 했는데(웃음).
◇태극마크의 무게
▲장=광인이는 고향이 경남 하동이지? 강만수 선배도 하동 출신이잖아. 하종화 감독은 너와 같은 진주동명고 나왔고. 쟁쟁한 배구 스타들을 고향 선배로 뒀네.
▲전=워낙 유명한 레전드들이 계셔서 저도 어릴 적부터 태극마크를 다는 꿈을 키웠어요. 대학교 2학년에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땐 박철우(삼성화재·현재 군 복무 중), 김요한(LIG손해보험) 등 잘나가는 선배가 많아서 긴장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처음 나가자마자 선발로 뛰라고 해서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장=나도 고3 때부터 대표팀 베스트 멤버로 뛰어서 그 마음 잘 알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선발로 나서느라 정신이 없지?
▲전=저는 작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V리그 끝나자마자 월드리그, AVC(아시아배구연맹)컵, 인천아시안게임까지 숨 돌릴 틈 없었거든요. 나름대로 고생했는데, 아시안게임 4강에서 일본에 패해서 아직도 분해요.
▲장=작년 아시안게임을 TV 중계로 보면서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이 솔직히 한심하다고 생각했어. 아무것도 되는 게 없었잖아. 태극마크에 대한 선수들의 의식이 너무 가벼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 요즘은 배구팬들 눈높이가 높아져서 그렇게 안일하게 하면 언젠가 외면당할 거야. 광인이는 군 면제도 받지 못하고 아쉬웠겠네.
▲전=그것보다 한·일전에서 우리의 플레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나온 게 화가 났습니다. 처음으로 눈물도 났고요. 일본은 역시나 기본기가 충실한 팀이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배구를 해야 할지 깨닫게 됐습니다.
▲장=브라질월드컵축구 때 이영표 해설위원이 '월드컵은 경험이 아닌 증명하는 자리다'라고 한 말을 되새겨보렴. 국제대회는 전쟁터야. 1979년에 모스크바올림픽 예선전에서 일본과 붙었을 때 두 세트를 먼저 내줬을 때 나와 동료 대표 선수들은 '지면 태극마크 반납하겠다'는 각오로 뛰어서 5세트에서 뒤집었어. 이후로 한동안은 일본이 한국 배구를 무시하지 못했지.
▲전=네, 다시 심기일전해서 저도 선배님처럼 한국 배구 하면 떠올리게 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