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던 그가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를 앓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4년 그는 'My Fellow Americans'(내 친구 미국인에게)로 시작하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이로 인해 인지기능 장애를 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때는 알츠하이머병 증상을 호전시키는 치료제가 나오기 전이었고, 치매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은 매우 부정적이었기에 당시 치매 발병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는 성명서를 통해 "최근에 나는 앞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수백만 환자 중의 한 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내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은 점차 심해지면 가족들이 힘든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내 아내 낸시를 이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구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예전에 낸시는 유방암을 앓은 적이 있었고 나는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그 병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이 조기에 검사를 받았기에 기뻤습니다."

레이건 前 대통령(사진 오른쪽).

레이건은 편지를 자기 손으로 직접 썼다〈사진〉. 내용은 매우 감동적이고 논리적이다. 우리는 이 편지로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인지기능 장애 초기에는 기억력 장애가 있어도 나름 판단력이나 사고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이건도 다른 환자들과 똑같은 경과를 겪었고, 점차 진행하는 인지기능 장애로 가족들의 고통은 심해졌다. 이처럼 치매가 진행되면서 보호자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점은 존경하던 집안 어른의 위엄·품위·존엄성이 붕괴하는 것이다. 레이건과 아내 낸시는 1995년 재산을 털어 '로널드 & 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설립했고,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펼쳤다. 레이건은 10년간의 투병 끝에 93세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흔히 치매 환자는 나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으로 배척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치매 정책 구호는 '치매와의 전쟁'이다. 하지만 레이건의 사례에서 보듯 알츠하이머병은 세상 어느 누구도 발병 소지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정상인이 기억장애 대상이 되고, 인지기능이 감소하면서 경도 인지장애 환자가 되고, 더 심해지면 중증 치매 환자가 된다. 그래서 치매는 전쟁 대상이 아니라, 달래고 얼러서 같이 가야 할 동반자와 같은 존재다. 초기부터 적절하게 대처하면 독립적인 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 있고, 본인이 가진 우아함이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