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현민 기자] tvN 드라마 '미생'은 10주 동안의 방송에서 참 많은 것을 이뤄냈다. 2014년 케이블 드라마 최고 시청률은 물론, '응답하라 1994'에 이은 역대 케이블 2번째 시청률을 기록했다. 화제성에 있어서는 그보다 높은 지상파 드라마의 그것을 훌쩍 상회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결과물이다.

원작에서 출발해 수 차례 감동을 안긴 명대사들은 물론, 드라마를 위해 효율적으로 재가공한 연출, 캐릭터를 화면에 되살려놓은 듯한 적절한 캐스팅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모두 시너지를 냈다. 특히 매회를 마무리짓는 엔딩 부분은 한 회를 곱씹게 만들었고, 차회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케 해 드라마의 성공을 촉발하는 데 기여했다. 이에 '미생'의 벅찬 감동을, 20회의 엔딩으로 다시 짚어봤다.

◇ 1-2국. 꼴뚜기의 상처, '우리애'로 치유

1회는 원작에 없는 '꼴뚜기 에피소드'가 새로 첨가됐다. 드라마에 어울림직한 다소 과장적인 따돌림과 현실성이 결여된 에피소드였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이는 내세울 것 없는 '고졸 낙하산' 장그래(임시완)를 한층 더 불쌍하게 만들고 동정심을 유발하게 이끌었다. 어머니가 힘들게 산 '신상 정장'이 오징어젓과 꼴뚜기로 범벅이 된 그래는 1회 엔딩서 입사동기 인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읊조렸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안 해서 버려진 것 뿐이다'라고.

1회의 안쓰러움은 2회까지 이어졌다. 억울한 '딱풀 사건'이다. 영업 2팀 인턴의 실수탓에 영업3팀 장그래가 혼나는 일이 발생하고, 이를 뒤늦게 안 오과장(이성민)이 어쩔 줄 몰라하며 장그래를 챙기는 모습. 결국 술에 취해 만난 영업2팀 과장에게 술주정을 부리며 역정을 냈다. 이날 장그래는 '우리애'라고 불렀던 장면을 머릿 속에서 구간반복재생하며 빙그레 미소 짓는다. '혼자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써내려가며. 또한 2회 엔딩에는 '개벽이 인턴' 한석율(변요한)과 피티조를 짜는 모습이 등장했다.

◇ 3-4국. "현장이지 말입니다", 그리고 "우린 아직 다 미생"

인턴피티는 그야말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장그래가 어찌됐건 이 난관을 극복하고 원인터내셔널에 입사할 거라는 걸 아는 대부분도 기나긴 피티에 빠져들었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3회 엔딩에서 등장한 장그래와 한석율의 주먹다짐이다. 입술이 터져 피가 맺힌 두 사람은 '파트너에게 물건을 팔라'는 2차 PT과제를 받고 난감해 한다. 또한 "내일은 살아남아야 하니깐요"라는 장그래의 말은, 오과장이 자신의 부하직원을 위해 관계가 껄그러웠던 최전무(이경영)를 찾아가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원인터에 신입사원이 된 장그래.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옥상에서 건넨 오�아의 한 마디. "이왕 들어왔으니깐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깐". 그리고 장그래가 프로 바둑기사를 준비했던 걸 모르는 오과장의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발언이 등장한다. "넌 잘 모르겠지만, 바둑에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라고. 이 말은 드라마 '미생'의 인기에 힘 입어, 나름의 유행어가 된다.

◇ 5-6국. 상사맨으로 살기, 그리고 '좀 많이'

5회는 영업1팀 선차장(신은정) 에피소드가 다뤄졌다.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이 충분히 잘 담아냈다. 그리고 자원팀과의 마찰로 인해 영업3팀 오과장과 장그래가 결속을 견고하게 만들기도 했다. 장그래 눈에 비친 오과장의 창밖으로 하트모양의 불빛이 등장해 향후 두 사람의 훈훈한 '브로맨스'를 이뤄낸 회차기도 했다. 5회의 엔딩에는 딸을 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선차장, 그리고 오과장을 데려다주고 현관 밖에 널부러진 장그래의 모습으로 감동과 웃음을 모두 충족케 했다.

6회는 여러모로 씁쓸했던 회차다. 추억 속 친구로 기억돼던 이가 냉혹한 사회에서 철저한 갑을관계에 내던져졌을 때, 얼마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기 때문. '좀 많이'만 무한반복해 타이핑하며 분통이 터지는 오과장의 심정은 아들의 유치원 영상으로 녹아내렸다. 아들이 '상사맨'으로 변신해, 슈퍼맨과 아이언맨과 투닥거리는 모습은 그가 다시 한 번 상사맨으로서의 자부심을 붙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 7-8국. "니들이 술맛을 알아?"…박과장 첫등장

사내 정치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실감나게 다뤄 몰입감을 높였다. 김부장, 그리고 최전무로 이어지는 사내 핫라인에 발담지 못한 오과장의 고난이 겹쳐져 결국 그를 술의 노예로 만들어다. 많은 이들이 궁금했던 '왜 항상 직장인들은 술을 마시는 걸까'를 별다른 설명 없이 이해되게 만들었던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과장은 아내에게 실컷 혼나고 화장실에서 정면을 응시하며 시청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들이 술맛을 알아? 아냐고?"라고. 장그래도 눈물을 글썽였다.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신입이라 죄송하다'고 되뇌면서 말이다.

7회에서 가라앉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는지, 제작진은 8회에선 아랍 메카폰 아이템을 놓고 신념과 실적 사이에서 고민하는 영업3팀의 모습을 그려냈다. '2차 접대는 할 수 없다'는 오과장의 신념과 '2차 접대가 끝나야 계약서에 사인한다'는 아랍 메카폰 문충기 대표의 방식이 엇갈린 상황이었다. 결과? 문충기 아내를 통해 신념도 지키고, 실적도 지킨 해피엔딩이었다. 허나 인생지사 새옹지마. 엔딩신에 등장한 박과장(김희원)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향후 영업3팀에 불어닥칠 태풍을 예고했다.

◇ 9-10국. 영업3팀 vs 박과장…"그래도 바둑"

'트러블메이커' 박과장의 존재는 예상대로 파장을 일으켰다. 사사건건 장그래를 무시하고 인격적인 모독을 서슴지 않던 박과장은 김대리는 물론 오과장과도 불편한 기류를 형성한다. "영업3팀에 온 이상 우리 사람이야"라고 포용하고 다독였던 오과장도 불성실한 박과장의 태도에 끝내 폭발한다. "너랑 더 이상 이렇게는 일 못하겠다"고 발언하고, 그를 마주보는 박과장의 투샷으로 마무리.

그렇게 시작된 박과장과의 악연은 결국 그가 추진하고 있던 요르단 중고차 사업에 얽힌 비리·불법계약을 파헤치는 데 다다른다. 특히 '명탐정 코난'에 빙의한 듯한 익숙하지 않은 장그래의 모습은 묘한 쾌감을 안기기도 했다. 이후 줄줄이 엮여 징계를 당하는 라인들을 보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장그래의 모습. 한밤중에도 도시를 밝게 비춘 사무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위로가 이어졌다. "그래도 내 바둑이니깐. 내 일이니깐.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깐".

◇ 11-12국. '판을 흔드는' 장그래, 지지하는 오차장

요르단 사건 비리 포착으로 승진하는 오차장. 그리고 다음 사업 아이템 물색 중 앞서 중단된 비리 사업을 다시 한 번 추진하자는 장그래의 모습이 흥미를 더한 에피소드다. 많은 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 장그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오차장의 모습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직장상사'라는 지적을 안기기도 했다. "그게 상사맨이다. 좋아 해보자 이 사업. 해보자고!".

또 한 번 영업3팀을 판타지로 몰아넣었던 요르단 피티. 물구나무를 서가며 '판을 흔드는' 장그래의 모습과 위험을 감내하고 '듣도 보도 못한' 파격적인 피티를 준비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불안감을 형성케 했다. 피티장으로 몰려오는 최전무를 필두로 한 임원진의 모습은 하루라도 빨리 요르단 피티성공 여부를 알고픈 이들에게 스포일러를 주저않고 원작 만화를 펼치게끔 만들었다.

◇ 13-14국. 뭉클 엔딩…'더 할 나위 없었다'와 '어머니의 자부심'

전 회를 통틀어 가장 희망에 가득찼던 회차였다. 모두를 궁금하게 만들었던 요르단 자동차 사업 피티는 대성공을 거뒀고, 일개 계약직 사원 장그래의 이름이 원인터내셔널 사장(남경읍)의 입에서 담기게 했다. 오차장이 건넨 첫 번째 크리스마스 카드를 옥상에 올라와 열어본 장그래. 그리고 그곳에 적힌 짧은 글귀 하나. '장그래, 더 할 나위 없었다. YES!'

희망을 줬다 뺐으면 딱 이런 기분일까. 요르단 사업 피티 성공으로 기쁨에 찼던 장그래는 '계약직'이라는 현실에 부딪히며 잠시나마 들떴던 감정을 내려놓는다. 욕심도 허락받아야 하는 게, 바로 현실 속 비정규직의 모습이었다. 계약직 장그래에게도 위안은 있었다. 설 연휴 친척들로 가득찬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장그래는, 되돌아간 그곳에서 어머니의 눈물섞인 못난 아들자랑을 엿듣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난 어머니의 자부심'임을.

◇ 15-16국. "그래도 내일 봅시다" & 정과장의 역습(?)

장백기와 장그래가 한층 관계가 두터워졌다. 제출한 새 아이템이 '너무 거창하다'는 혹평을 들은 장그래는 결국 10만원으로 장사를 해오라는 미션을 받고 거리로 나선다. 철강팀 강대리(오민석)의 제안에 장백기도 합류한다. 처음에는 다투며 불안한 기류를 형성했던 두 사람은 이후 깡소주를 마시고 속옷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쳐 새로운 '남남케미' 커플로 탄생했다. 그래도 여전히 쌀쌀맞게 "난 아직도 장그래씨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말하고는, 앞서 9회때 강대리에게 배웠던 "내일 봅시다"를 써먹었던 게 15회의 엔딩이다.

안영이(강소라)를 내내 구박했던 자원2팀이 드디어 뭉쳤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억지 간섭하고 손찌검까지 마다앉는 마부장(손종학)에게 반기를 든 것. "제 몸에 저희 몸에 다시는 손찌검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폼나게 내질렀던 정과장(정희태)의 모습은, 추후 계단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과 대조돼 웃음을 자아냈다. 계단에 앉은 유대리의 "아이씨~ 죽었어요"라는 말도 이후 회자됐다.

◇ 17-18국. 최전무와 손잡는 오차장, 장그래의 반발

17회에서는 5억불 수주가 걸린 중국 아이템이 영업3팀에 떨어진다. 이는 알고보니 최전무의 제안. 평소라면 내키지 않았을 일이지만, 김대리(김대명)의 고과는 물론 계약직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오래도록 고민 또 고민한다. 과거 자신을 믿었던 계약직 사원 은지(서윤아)의 죽음을 떠올리며 아내에 조언을 구하려 했던 그에게 돌아온 건 "그냥 해. 맞다고 생각하는 거 그것만 생각해"라는 현명한 답이었다.

어렵사리 최전무와 한 배를 타는 것을 결정한 오차장을 막아선 것은 오히려 장그래였다. 자신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옳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래는 오차장에게 처음으로 반기를 들며 소리를 내질러도 봤지만, 그를 되돌리지 못했다. 결국 그가 택한 건 중국지사 석대리에게 해당 사업 아이템의 위험성에 대한 것을 확인하고 이 통화 내용을 모두 녹취하는 것이었다. 이를 목격하고 '우리애' 장그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오차장의 모습이 18회를 끝맺었다.

◇ 19-20국. 오차장·장그래, 인연은 인연이다

19회는 많은 이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회차다. 그도 그럴것이 장그래의 한마디로 촉발된 후폭풍이 중국 아이템을 스톱시키고, 최전무 좌천과 함께 영업3팀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결국 오차장은 이 모든 것의 총대를 메고, 퇴사를 결심한다. 영업3팀의 오차장 송별회. 회식 후 장그래는 하염 없이 오차장을 따라가고, "버텨라. 이겨라"라는 오차장의 말을 그 앞에서 되풀이한다. 그리고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죄책감에 눈물을 쏟아냈다.

액션스타 장그래의 탄생. 오프닝에 잠깐 등장했던 요르단에서의 추격전, 그리고 심문까지 그려지는 스펙터클한(?) 회차였다. 또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되새기게 하는 자동차 장면은 '미생'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청자를 어루만졌다. 촬영장에서 배우와 스태프의 모습, 그리고 자막까지 올라가고 등장한 엔딩은 오차장과 장그래의 장례식장 인연을 그렸다. 아버지를 떠나 보낸 장그래와 계약직 부하직원 은지의 죽음을 듣고 뛰어들어온 오차장의 부딪힘이 바로 그것. 오차장과 장그래는 그렇게 서로의 소중한 사람의 빈자리를 차지할 운명이었던 것이 예견됐고, 원인터를 거쳐 새롭게 함께 한 직장을 통해 이는 실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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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