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요 하천에서 여러 항생제를 써도 살아남는 수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가 대거 검출〈본지 11월 28일자 A1·8면〉된 데 이어, 국내 하천에서 잡히는 어류 가운데 암수의 성(性) 세포를 동시에 갖고 있는 중성화(中性化·Intersex)한 어류가 늘고 있다는 정부 용역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암컷 난소에서 수컷의 생식세포가 발견되거나 수컷 정소에 암컷 생식세포가 자리 잡아 마치 자웅동체(雌雄同體)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강물에 녹아 있는 각종 의약·화학물질 등이 환경호르몬(내분비계 장애물질) 작용을 하면서 물고기가 이 같은 이상 현상을 보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강물에 든 각종 의약물질과 숱한 화학물질이 물고기의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등 하천 생물체를 공격할 것이라는 그간 국내외 과학계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전국 각지 하천·연안에서 '중성화 어류' 발견
28일 본지가 입수한 '담수어류 중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의 축적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남대 조현서 교수팀이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의뢰로 지난 한 해 동안 남한강(단양·여주), 낙동강(안동·왜관), 영산강(담양·광주) 등 6개 지점에서 붕어 62마리를 채집해 생식세포 이상 여부를 조사한 결과, 20마리(32.3%)가 이성(異性)의 생식세포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세포 현미경 관찰 등을 통해 62마리 가운데 수컷(14마리)은 원래의 생식세포를 정상 보유했지만, 암컷(48마리)은 20마리(41.7%)의 난소에 수컷의 생식세포가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 관계자는 "왜 암컷에게서만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성(異性) 생식세포를 보유한 붕어 비율은 2003~2006년엔 5~8% 수준이었다. 10년 만에 비율이 대폭 상승한 것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전남대 이정식 교수는 "강물에 든 의약물질이나 농약, 산업공정에서 나오는 화학물질 등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각종 환경호르몬에 물고기가 오랜 시간 노출되면서 이 같은 병리적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단지 인근에서 잡힌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됐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1년 펴낸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환경 중 생태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 시화·안산, 울산·온산, 전남 광양·여수 지역의 연안과 소하천에서 잡힌 748마리(8개 어종) 가운데 116마리(15.6%)가 이성의 생식세포를 보유했다.
◇"전국 골고루 높은 비율 분포"
이성 생식세포를 보유한 붕어는 일반 하천이나, 오염물질이 더 많이 배출되는 산업단지 주변 하천·연안에서 비슷한 비율로 관찰됐다. 남한강(단양·여주), 낙동강(안동·왜관), 영산강(담양·광주) 등 일반 하천 8개 지점에서 32.3%(62마리 중 20마리)였고, 산업단지(시화·안산, 울산·온산, 여수·광양)는 31.3%(83마리 중 26마리)였다.
외국은 폐수 처리장 인근 지역 등 오염도가 높은 곳에 사는 물고기의 이성 생식세포 발견 비율이 많게는 30%대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식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지역적 특성에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골고루 높은 비율로 분포하고 있어 문제"라며 "24시간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의약물질을 비롯해 강물에 흘러든 각종 내분비계 장애물질에 오랜 기간 노출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 밖 어류들의 중성화 비율은 어종별로 차이가 컸다. 여수·광양지역의 남수천에서 잡은 농어(40마리)는 이성 생식세포 보유 현상이 전혀 관찰되지 않은 반면 시화·안산지역의 군자천·정왕천 등지에서 채집한 가숭어(266마리)는 54마리(30.8%)가 이성의 생식세포를 보유했다〈표〉.
◇또 다른 신종 유해물질도
비스페놀-A와 과불화화합물(PFCs)도 수중 생태계의 건강성을 위협하는 물질로 최근 주목되고 있다. 항생제 등 의약물질과 함께 국제학계가 '신종 유해물질(Emerging Micropollutants)'로 분류한 물질들이다. 플라스틱이나 음료용 캔 코팅제 등으로 사용되는 비스페놀-A는 사람이나 동물의 내분비계를 교란시켜 정자 수 감소, 불임 같은 생식 독성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과불화화합물(8종) 가운데 PFOA는 프라이팬 바닥 코팅제 등으로 사용되는 테프론(미국 듀폰사가 개발한 불소수지)을 제조하는 과정에 첨가제로 사용되는데, 동물 실험에서 임신 장애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물질들 역시 전국 각지의 하천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정식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면 일단 전국 하천에 대한 정기적인 실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유해물질이 강에 유입되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고 댐·저수지 바닥에 퇴적된 오염물을 걷어내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