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했으면 갚아줘야 한다. 상대가 센 놈일수록 복수의 희열은 배가된다. 4대 성인급 아량을 갖추지 못한 이상, 누구에게나 “인생은 복수에 대한 열망”(폴 고갱)이다. 국내 52년 TV 드라마 역사에서 복수가 밥 먹듯 등장해온 연유다. MBC 주말극 ‘전설의 마녀’도 마찬가지. 제목 속 ‘전설’(湔雪)은 ‘복수’의 동의어다.
대기업 신화그룹에 의해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인생이 파괴된 4명의 여자가 복수를 다짐한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남편이 죽자 배임 횡령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된 한지혜를 포함해, 고두심(존속 살인), 하연수(살인 미수), 오현경(식품위생법 위반) 등 한국여자교도소 10번방 수감자 전원이 신화그룹의 희생양이다.
거대 악이 있고, 맞서 싸우는 소시민이 있다. 아낌없이 퍼주는 비현실적 천사(박인환)와 아낌없이 나쁘기만 한 악마(박근형)가 있다. 본명인 김영옥 역으로 출연하는 일자무식의 교도소 방장(김수미), 박인환과 고두심 사이를 질투하는 치킨집 배 여사(이숙) 같은 마당극풍 왈가닥이 있다. 세대별 캐릭터마다 러브 라인이 있고, 가족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통속극의 전형이다.
여기에 드라마의 테마를 형성하는 어떤 메타포가 직업군으로 설정된다. '빵'이다. '출소 전후 달라지는 네 여자의 성장기'라는 제작 의도처럼, 주인공 한지혜는 교도소 내 제빵 교육을 받으며 제빵사가 돼 "정정당당히 나만의 방식으로 복수하겠다"는 동화적 대사를 내뱉는다. 제빵 선생님 하석진과의 로맨스는 당연지사. 국숫집을 배경으로 한 '백년의 유산'에서 호흡을 맞춘 구현숙 작가와 주성우 PD가 다시 의기투합했는데, '밀가루 집착증'의 징후가 보여 오싹하지만 주말극 시청률 1위(22%)를 달성했다. 변신 대신 택한 안전이 유효했음을 입증해낸 것이다.
여자 교도소 재소자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본지 2005년 12월 24일자 1면 기사를 통해서였다. 엄마 수감자들과, 생후 18개월이 되면 교도소를 떠나야 하는 갓난애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울렸다. 이게 2009년 영화 '하모니'로 탄생했고, 이번엔 드라마다. 10년쯤 된 것이지만 드라마 소재론 새롭다. 하지만 신화그룹 둘째 부인 전인화는 KBS '제빵왕 김탁구'(2010)에서 막 걸어나온 듯하고, 재벌가 집안 갈등이나 사회로 복귀한 전과자의 고충은 마르고 닳도록 봐 온 터라 눈 감고도 보일 지경. 서로 부잣집 자제인 것처럼 속이고 만나는 이종원과 오현경이, 알고 보니 고시원 옆방 사는 원수지간이었다는 설정은 시계를 먼 옛날로 돌려놓은 듯했다.
명색이 복수극인데, 주인공들은 치밀하긴커녕 아둔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테이큰’의 리엄 니슨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올 복수의 그날을 위해 묵묵히 인내하는 종교적 끈기를 기대한 건 더더욱 아니다. 분량을 딱 절반만 줄였으면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