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는 뭐든지 제 마음대로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예요. 드라마는 성공작이 많았지만 영화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고…. 그런 감정이 이번 작품에도 드러날 겁니다."

분명 훤칠한 동안(童顔)이었으나, 배우 김석훈(42)도 이제 불혹을 넘긴 나이다. 그는 다음 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찰스 디킨스 원작의 연극 '위대한 유산'에서 주연을 맡는다. 오광록·길해연·조희봉 등 모두 17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대작이다.

‘연극에는 소박하고 따뜻하면서도 훌륭한 맛이 있다’는 김석훈은 “연극을 한번 하면 몰두하고 싶어서 더블캐스팅을 피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번엔 무대 복귀에 좀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2009년 '밤으로의 긴 여로' 이후 5년 만에 연극으로 돌아온 김석훈은 사실 '연극 출신'이다. 중앙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1998년 국립극단 단원이 됐다. 이듬해 임영웅 연출 '친구들'에 출연했지만 이보다 앞선 진짜 '무대 데뷔작'은 뜻밖에도 발레였다. "국립발레단 '해적'에서 창 들고 한 시간 동안 서 있는 '병사1' 역할이었어요." 이후 TV 드라마 '홍길동'에서 일약 주연을 맡게 됐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번 연극 '위대한 유산'에선 주인공의 10~20대 시절도 연기해야 한다. "외모나 목소리를 바꿀 수는 없죠. 하지만 나이를 먹어도 누구나 내면에는 청년기의 방황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 내면을 어떻게 끄집어내 표현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어요." 그가 보기에 이 작품은 일종의 '회귀(回歸) 연극'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애쓰던 주인공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사실은 신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됐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영국 영어는 양쪽 계층이 쓰는 언어가 다른데, 이것도 무대에서 우리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는 부담감 때문에 연습 첫날에는 떨려서 우황청심환까지 먹어야 했다. 원작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어서 연극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다. "대사도 엄청 많고, 왈츠 춤도 춰야 돼요. 아이고, 요즘엔 잠을 못 잡니다."

그래도 자꾸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으로 따지면 호텔 뷔페가 아니라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상이라고 할까요? 소박하고 따뜻하면서도 훌륭한 맛이 있어요." 조금씩 끊어서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두 달 이상 분석하고 연습한 뒤 무대에서 쏟아내듯 연기하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이번에도 너무 '착한' 역할이 아닐까? "배우로서는 아무래도 악역에도 욕심이 있죠. 그런데 사람들이 저한테서 착한 역할만 원하는 것 같아요. 휴 그랜트가 액션 영화 못 찍잖아요."


▷연극 '위대한 유산' 12월 3~28일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