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상사. 현실에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풍경이다. 이토록 이상적인 상황이 지난 22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 12회에서 펼쳐졌다.
이날 방송에서는 장그래(임시완)가 제안한 요르단 중고차 사업 건을 추진하는 영업 3팀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오차장(이성민)은 의욕적인 데 비해 팀원들은 동상이몽이었다. 천과장(박해준)은 최전무(이경영)의 속을 알 수 없어 초조했고, 김대리(김대명)은 한 켠의 찜찜함을 안고 최선을 다했다. 장그래는 천과장의 경고에 주눅이 들었다. 급기야 자원2팀 티원들이 영업3팀에 찾아와 난동을 부렸고, 예상대로 마부장(손종학)도 반대했다.
의외는 최전무였다. 최전무는 사업을 허락하되 공개 프레젠테이션(PT)를 요구했다. 영업3팀은 성공적인 PT를 위해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으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함이 네 사람을 사로잡았고, 장그래는 "지도를 뒤집어 보듯 PT를 새롭게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천과장과 김대리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 의견을 내놨지만, 오차장은 장그래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판을 뒤흔들어야 한다는 장그래의 의견에는 신입사원다운 패기와 열정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모험이었다. 극적인 전개였지만 보는 시청자들은 편하지 않았다. 중간관리자의 반대를 꺾으면서까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상사를 우리 사회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들고, 장그래의 발언 이후 뒷수습을 떠안을 이들이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또 끈끈하던 영업 3팀의 묘한 균열과 장그래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김대리의 서운함까지 감지됐다.
이런 '이상적인'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데는 이성민의 공이 컸다. 오차장은 고집이 세고 정치에 무심하지만, 부하들을 제 자식처럼 챙기며 일 잘하는 상사다. 그는 걱정 많은 장그래를 '장팀장'이라 놀리면서 힘을 실어줬고, 입버릇처럼 "안영이가 우리팀에 왔어야 했다"고 말하면서도 장그래의 말에서 답을 찾았다. 현실에서 만나면 피곤하겠지만, 드라마 속이기에 호탕하고 때론 무모한 그는 낭만적이었다. 또 그것이 현실적인 드라마 '미생'이 안기는 또 다른 판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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