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소형 투자회사 '엔파이낸스'에서 일하던 귀욤 상타크뤼(29)는 지난해 9월 창업에 나섰다. 하지만 사업허가서를 받는 데만 꼬박 3개월이 걸리는 프랑스의 행정 규제에 질렸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영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기차만 타면 2시간 남짓한 거리"인 런던에서 사무공간 정보공유 사이트 '집큐브'를 세웠다. 현재 상타크뤼처럼 비즈니스를 위해 런던으로 넘어간 프랑스인은 약 35만명이다.

이런 변화에는 지난 14일 개통 20주년을 맞은 고속열차 '유로스타'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영국·벨기에 3개국이 공동 운영하는 유로스타는 영·불 해협 해저터널을 통해 최고 시속 300㎞로 각국 수도인 런던·파리·브뤼셀 등을 오가는 초고속 열차. 런던~파리를 2시간 15분 만에 주파하기 때문에 거처를 손쉽게 옮기는 젊은이가 급증, 이들을 '유로스타 세대'라고도 부른다.

두 나라를 잇는 해저터널 구상은 19세기에 처음 나왔지만, 영국 일각서 "유럽 대륙으로부터 침입로로 이용될 수 있다"며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마거릿 대처 총리 때인 1988년 경제 활성화를 위해 착공됐다. 유로스타는 1994년 개통 직후엔 이용객이 애초 예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연 300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럽연합 출범(1993년)· 유로화 도입(1996년)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국경을 초월한 관광·비즈니스 수요가 늘었고, 지난해 처음으로 연 이용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독일철도청(DB)은 자국 고속열차인 이체(ICE)를 유로스타에 잇대 런던까지 개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관광이나 학술 분야도 유로스타 덕을 보고 있다. 영국 정부가 주도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바이오 연구센터는 각국 전문가를 쉽게 모을 수 있는 유로스타 출발역(세인트 판크라스) 코앞에 건립 중이다. 겨울철 유로스타 노선은 알프스 스키장까지 연장 운행하는데, 부르생모리스 등 프랑스 스키장으로 오는 영국 관광객이 연간 30만명이 넘는다. 고속열차로 사실상 국경(國境)이라는 장벽이 사라지자 유럽 각국의 경쟁력이 적나라하게 비교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사회당 집권 후 반(反)기업 정책과 정서가 팽배해지자 기업인들이 주저 없이 런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불법 이민자 폭증도 부작용으로 꼽힌다. 유로스타 화물열차를 이용해 영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민자들이 출발지인 프랑스 칼레에 모여들어 폭력 사건이 폭증했다.